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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은희 Jun 04. 2018

자율과 타율, 그 어딘가_1

나는 수학이 정말 싫었다.


수학이 싫어서 문과를 선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수학이 싫었다.

못해서 싫었는지, 싫어해서 못했는지의 논쟁은 그 다음이고 

수학이 싫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1. 일단 스토리가 없다는 점이다.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문제를 풀라고 한다. 이유도 없고, 개연성도 없이 식을 하나 던져주고서는

이 방정식을 풀라던가, 함수를 구해서 그래프를 그리라던가, 기타 등등...

사실 나는 이 도형의 넓이가 궁금하지도, x값이 뭔지도, 함수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지가 않았다.

그래서인지, 수학 중에서도 확률과 통계는 잘했는데 나중에 스스로 곱씹어본 이유는 확률과 통계문제는 대부분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아닐까.


2. 두번째는 한 가지 공식을 가지고 다양하게 응용된다는 점이다. 

분명 도출해내야 하는 답은 한가지인데, 풀이 방법은 모두 다르다.

그래서 모두가 답인 동시에, 내가 틀린지도 모르고 풀이를 계속해 나간다. 

깨닫는 순간 이미 다시 풀기엔 늦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에 단순 암기라며 이과인 친구들이 치를 떨었던 사회, 그중에서도 특히

역사 과목에서는 늘 좋은 점수를 받았는데

주어진 스토리를 읽어가며 공부해서였는지, 외우는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때 수학이 싫어서 피해다니던 나에게 엄마는 그 어떠한 사교육도 시키지 않았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렇게 수학이 싫었던 나는 어쩌다보니 경제학을 공부해서

경제연구소에서 연구원 타이틀을 달고 엑셀 노가다를 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

아무것도 안시킨 엄마의 자율적 교육의 성공인지, 아님 그냥 얻어걸린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도 미분은 할줄 알면서 단순 연산은 틀려대고, 고등학생 사촌동생이 수학문제를 들고오면 자는척 하는거보면, 역시나 자율적 교육이란건 실패한 방법이었는지도.


문과는 문과답게 어학과 사회만 잘하면 된다는 7차교육과정의 피해자로, 미적분한번 안해보고 대학에 입학하게 된 7차교육과정의 문과들은 - 특히 그 중에 경제학을 전공한 나같은 사람들- 걷기도 전에 뛰어야 하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럴때면 엄마가 과외나 학원, 허다못해 학습지라도 좀 시켜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는데,

외할아버지의 압박으로 억지로 공부를 했던 엄마는, 그에 대한 보상심리였는지 나에게는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시험을 보고나면 틀린개수대로 매를 맞아야했던 엄마는, 내가 수학 50점을 받았던 날에 매를 들기는 커녕 치킨을 사주셨다. 50점이 창피해서 말하지 않았는데, 95점 받은 옆집애 엄마가 'OO이는 수학 몇점이에요?"라고 물어봐서 발각된 점수였는데도, 치킨을 사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그 아줌마 참 얄밉다.

여튼 정확히 몇학년이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차라리 엄마가 50점이 뭐냐고 혼을 냈으면 마음이 더 편했을것 같았다. 엄마의 고도의 심리전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 다음 시험에서 100점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물론 1회성이었다.)


인간의 자율성과 타율성에 대해, 어떠한 답이나 정의를 내리긴 어렵지만, 어느 정도의 타율적인 압박이 있어야 한다는것에 동의는 한다. 사실 사람마다 성향도, 상황도 다르기 때문에 정답도 없다.

그러나 엄마보다 학원선생님을 더 자주보고, 그나마 부모님과 함께 있는 주말에도 스마트폰에 묻혀사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다. 


나이별로 주어진 미션을 클리어해야지만, 제대로 된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이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제일 크겠지만, 어떠한 스토리도 없는 계산문제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느꼈던 나처럼, 

목표나 목적의식 없이, 좋은 학교에 진학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아이들은 언제쯤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퇴근길에 학원 차량을 봤다. 

나보다도 집에 늦게 들어갈 아이들. 그 아이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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