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버린 이후의 하루들

사라지고도 머무는 것들

by Ha Eun Marel



알면서도 놓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한동안 조금씩 기다렸다.
이 글은 무너진 마음 위에 아주 천천히 숨을 얹는 법을 배워야 했던 그날들의 고백이다.



오랫동안 그의 목소리를 꿈꿨다.
회한과 그리움이 섞인 정확한 그 음색을.
그것은 오직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듯했다.


한밤중, 예기치 않은 메시지를 상상했다.
“내가 바보였어. 미안해. 이제야 알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너 하나뿐이야.”
그 말을 기다리며 깨어 있었다.


그가 마침내 잠에서 깨어나,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깨닫고 나에게 달려오는 모습을 그렸다.
마치 사랑이란 간절히 원하기만 하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그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그 전화도, 그 목소리도.



세상은 점점 회색으로 바뀌었다.
하루는 길고 텅 비어 있었다.
음식은 아무 맛이 없었고,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세상을 밝혀주던 색들이 하나씩 사라졌고,
그와 함께 삶에 대한 열정도 사라졌다.
세상이 중심을 잃고, 나는 그 바깥에서 끌려다니는 느낌이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존재처럼.
억지로 일어나, 집 안을 떠돌며 나의 외로움이 메아리치는 소리를 들었다.


침대는 피난처이자 함정이 되었고,
그 안에서 나는 꿈과 악몽 사이에 가라앉았다.







그날 밤, 마지막 통화를 끝내고
나는 더 이상 그를 찾지 않으리라는 걸 분명히 알았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가 더는 찾아지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부서졌다.
소리 없이, 눈물조차 없이.


아주 깊고, 끝없는 상처가 자리 잡았다.
마치 고통이 내 안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떠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나는 더 이상 그에게 글을 쓰지 않았다.
전화도 하지 않았다.
침묵에게 말을 거는 일을 멈췄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침묵도 하나의 대답이라는 것을.


누군가 침묵을 선택했다면,
그것을 해석하려 애쓰는 것은 내 몫도, 내 권리도 아니라는 것을.


그가 말이 없던 것은 잊은 것도, 무관심도 아니었다.
단지 분명하고 단호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런 선택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품위 있는 일은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그것은 용기가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었다.


그리고 그 고통스러운 포기 속에서,
나는 아주 천천히,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상처를 안고 걷는 법을,
아파도 숨 쉬는 법을,
짙은 안개 속에서도,
잠시 머무르고 싶은 작은 이유들을 찾아보는 법을.



처음엔 하루하루가 무너지는 충동과의 싸움이었다.
슬픔에 잠겨 사라지고 싶은 욕망과 맞서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주 조금씩,
나는 내 안에서 의외의 피난처를 찾았다.


말도 약속도 필요 없는 고요.
글쓰기는 폭풍 속에서 닻을 내리는 항구가 되었고,
예전엔 아프게 들리던 노래들은
이제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잃어버림만이 아닌,
버텨낸 나날들의 이야기.



그는 이 말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결코 듣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만이라도 그에게 말하고 싶다.
나를 그렇게 행복하게 해줘서 고마웠다고.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일지라도.



그 순간은 작고 덧없었지만

영원의 한 조각이었다.


혼돈 속에서 숨 쉴 수 있는 짧은 틈.
두려움 없이, 조건 없이, 가면 없이
사랑할 수 있다고 느낀 순간.







해질 무렵의 바다처럼 —
아름답고, 거대하지만 늘 멀어지는 것.


나를 해변에 홀로 남긴 채,
피부에는 소금기만 남기고,
가슴에는 부재만을 가득 남긴 채.


그 사랑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처럼
그렇게 떠나갔다.



아팠지만 결국은 하나의 선물이었다.


-Ha Eun Mar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