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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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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Apr 07. 2019

하늘아, 오늘은 뭘 하면 좋을까?

2019.3.30

지금은 오전 7:40분. 이곳에서는 일찍 일어나게 된다. 아직은 여행 온 기분을 만끽하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돌아가야 할 곳이 없다는 것에 조금 더 편안하다. 새벽에 살짝 비가 내렸고 마당이 조금 젖어있다. 날이 꽤 쌀쌀한데 그래서인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으로 또 툇마루에 나와 앉았다. 


곧 해가 들면 매화 꽃은 거의 만개하겠다는 기세로 연분홍을 반짝이고 있다. 오랜만에 깨끗한 하늘은 자꾸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오늘은 뭘하면 좋겠냐고 묻고 싶은 마음에 자꾸 올려다보게 된다. 한시간이 다르게 목련 꽃잎이 떨어져 마당을 어지럽힌다. 동네 길 고양이들은 너무 배가 고픈지 갈변한 꽃잎을 이따금 주워먹는다. 


곱게 핀 수선화를 옮겨심어야 밭을 정리할 수 있는데 너무 아름답게 피어있어서 영 건들이기 싫다. 밭을 뒤집어야 한다는 생각만 계속 하면서 보고만 있다. 두둑은 어떻게 나누는게 좋을지, 심어보고 싶었던 해바라기는 어디쯤에 심을지 게으른 궁리만 며칠 째다.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일인가 싶다가도 누군가 으샤으샤 해줬더라면 더 일찍 끝냈을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은 서울 스터디에 참석하기로 하고는 가지 않았다. 이사비용으로 탈탈털린 주머니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호기롭게 가겠다고 선언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일이 생겼다고 거짓말 했다.


언젠가부터 돈 없을 때 하는 거짓말은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지냈더니 거짓말도 뻔뻔하고 당당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잘 된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 죄우지간 부러 걱정끼치지 않아 다행이라고 위안하며 시린 발을 움켜쥔다. 하늘은 더 파래지고, 바람은 더 차지고, 담배를 든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린다. 


그래서 하늘아, 오늘은 뭘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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