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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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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Apr 09. 2019

집에서 소리가 난다

2019.4.9

비가 오고 바람이 세차다. 집을 날려버릴 기세로 바람이 분다. 바람 싫은데 자꾸 불어대서 불안하다. 진짜 집이 날아가면 어쩌지? 집에 대한 불신은 도무지 나아지질 않는다.


비 때문인지, 바람때문인지 정전이 됐다. 집 차단기가 내려간 것은 아니니 마을 전체가 오후 6:30에 불빛 없는 집안이 얼마나 어두운지 깨닫고 새삼 놀라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러고 있다. 창호지 문 밖으로 들어보는 옅은 밝음은 집 안까지 전달되지 않는다.


어두운 방에서 다시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잠자코 있다. 마을이 아직 조용한데 오늘 안에 해결이 될런지 알 수가 없다. 자주 도움을 주시던 옆집아저씨마저 집에 없어서 물어볼 사람도 없다. 아랫집 할아버지는 아직 안 친한데..


빛은 소란스럽다. 어둠은 고요하다. 어두운 집안에 있자니 집에서 소리가 난다. ㅣ바람이 불어 외벽에 대충 늘여뜨려놓은 온갖 줄들이 휘날리고 있다. 가만 생각해보니 저 줄들도 어지간히 스트레스 받을 거 같다. 난 춤추고 싶지 않아! 벽에 부딪혀 아파! 바람아 멈추어 다오!


주방 천정이 가짜다. 진짜 천정에 붙어있지 않고 벽지가 내려 앉아있다. 우리 할머니 집도 그랬다. 벽지로만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천정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면 쥐똥 소리가 났었다. 마른 쥐똥들이 내가 치는 힘에 의해 통통 튀고 굴러다니는 소리.


그 생각이나 주방 천정을 툭툭 쳐봤다. 자갈자갈 쥐똥이 구르고 튀는 소리가 난다. 솔직히 언젠가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심히 불안하다. 안그래도 바람이 불어서 천정이 조금씩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저게 무너지고 그게 떨어지면? 으악 생각하기도 싫다.


숨쉬는 주방 천정에서 쥐똥소리가 나고 가끔씩 어딘가 쩍, 툭 하는 소리가 집안 곳곳에서 난다. 바람이 창호지 문을 훅훅 치고, 마루 기둥에 걸어놓은 봉지가 찰찰 흔들린다. 툇마루 위에 올려놓은 것들이 저 멀리까지 굴어다니는 소리를 가만 듣고 있다. 으흠 거기까지 갔구나. 멀리갔네?


어두운 집안에 있으니 집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얼마나 다양한지 느낄 수 있었다. 집과 집에 머물고 있는 다양한 물건들이 함께 모여사는 소리다. 이것도 나는 사는 소리구나 생각하다보면 쥐똥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냥 마음이 마구 넓어진다.


흠, 아무래도 쥐똥에는 마음주면 안될 것  같다. 천정아 멈추어 다오. 쥐야 다른데다 똥 싸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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