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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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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Apr 30. 2019

쏟아내고 싶은 말이 생기니까

2019.4.30

장흥으로 이사온지 어느덧 한달이 넘었다. 빠듯하고 가난하지만 여유롭고 마음넉넉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정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딱히 누군가와 연락하고 싶지도 않고, 만나거나 보고싶지도 않고 혼자있는 것을 행복해하며 잘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요 며칠 아르바이트하는게 힘들다. 나는 나를 통제하는 걸 정말 못참는데 2-3주쯤 지나면 괜찮아 질거라고 생각했던 사장님의 통제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는 것 때문. 나를 신뢰하지 못하고 모든 걸 다 정해놓고 싶어한다.


나는 그걸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알바생이고 성격상 대충하지 못하기 때문에 점점 더 신경을 곤두세우며 하고 있게 된다. 사장님은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계속 감시한다. 그리고 못하는 것을 끊임없이 지적한다. 그게 너무 많아서 이제는 좀 지친다.


그런데 또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한다. 심지어 말하고 안되어있으면 또 말하고 그런 정도로 지적하는 거라고 한다. 아이고. 나를 엄청 괴롭히던 과거 사장님이 떠오른다. 결국엔 나를 미워하던 사람. 끔찍하다.


나는 알바생이라 사장님에게 솔직할 수없고 시간이 해결해 줄 일들까지 하루빨리 정리되길 바라는 마음에 나의 행동, 습관, 심지어는 정신건강까지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관계를 맺다보면 알게되는게 있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같은거다.


내가 느끼기엔 사장님의 머릿속에는 나의 모습이 정해져있고 그것이 과거의 사장님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꼈는지 나에 대해 아는 척이 심하다. 그는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가 궁금해해서 내가 대답해준 적은 한번도 없다. 어쩌다 나온 말 몇마디들로 나를 규정하고 있다.


친구였다면 했을 말도 사장님에겐 못한다. 함부로 말하고, 짜증내고, 소리를 질러도 나는 가만히 있어야 한다. 그게 고용주와 알바생의 관계라는 것을 사장님은 아직 잘 모르는것 같다. 이런 하소연을 막 해대고 싶어서 갑자기 외로워졌다.


뭔가 쏟아내고 싶은데 그럴 상대가 없을때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끼는 건가. 내가 뭔가 하고 싶을때, 전달하고 싶거나, 고민을 상담하고 싶거나, 의견을 구하고 싶거나 그럴때 그러니까 누군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마침 아무도 없다는 것이 외로움의 1차원적인 원인인걸까 생각해본다.


그래, 이제야 좀 외롭다.

내일은 마음도 날도 좀 맑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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