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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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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Jun 02. 2019

힘주지말고 그냥 흔들리기

2019.6.1

서운함이란 것이 어찌나 빠르고 큰 놈인지 미움까지 가는데 금방이다. 서운함에 뱉어낸 말들을 순식간에 꿀꺽꿀꺽 먹어버리고 금세 몸을 키운다. 입만 다물고 있어도 커지지는 않을 듯한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말을 할 수록 더 미워지고 미워하다가도 또 그럴만한 일인가 싶다. 역시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내 에너지까지 소모하는 일이다. 나는 언젠가 이 소모적인 감정을 그냥 흘려버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서 되고 싶다.


나는 많은 것을 감정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나와 첫 대화를 했을 때에 느낌, 상대의 눈빛을 본 느낌, 소리나 행동을 듣고 볼때의 느낌. 온통 느낌으로 관계를 시작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사람을 ‘잘’ 본 적이 없으면서 그 얕은 느낌은, 그러니까 그 잠깐의 감정은 왜그렇게 확신에 가득차있는 것일까.


때로는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다짐한다. 그리고는 또 감정적으로 좀 살자고 질타한다.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장흥에 온 몇개월간 나는 그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뭐가 뭔지도 모른채 산다. 그제야 알 것도 같은 것은 나는 제법 나를 억압해왔으며 그게 자의였든 타의였든 나를 한참 돌아가게 만들고 있다는 것. 누군가의 말마따나 그렇게 살아봤으니 지금의 이런 고민도 있는 것이니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걸까.


내 안에 나의 기준이 절대적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절대적인 기준은 나로도 모자라 다른 사람까지 억압하거나 억압하는데 실패하면 갈라서거나 거리를 두었다. 사람은 다 그냥 연약하고 서툰존재다. 이제는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보호하려다 타인에게 상처주지는 말자. 이제는 유연하게, 조금씩 흔들리는 사람이 되어, 믿고, 실망도 하고 하면서.


아리까리하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지금의 상태가 좋은 것도 같고 싫은 것도 같다. 분명한 건 내안에는 나에게 중요한 것들이 있고 그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있다는 것. 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변할 수 있도록 조금은 열어두고 중요한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만 되지 말자고 다짐한다. 기준이 있는 건 나쁜게 아니니까. 기준이 변하기도 하니까. 힘주지 말고 흔들리자. 미움에 지지말고, 미움 부정하지도 말고 그냥 바람 부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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