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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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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Aug 24. 2019

마음을 주지 않는 시기

2019.8.24

무엇에도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는 시기엔 할 말이 없다. 할 일도 없다. 한심하기 짝이없고, 젠장 돈도 없다. 친구는 사랑에 빠져 한창 정신없이 헤엄치고 있는데 그 글을 보면서도 나는 어쩐지 아-무 생각이 없다. 아, 나처럼 한심한 기분 안느낄 수 있어서 부럽긴하다.


나는 나를 너무 사랑하는지라 채식하는 나를 먹이려 밥을 하고, 빵을 굽고, 쨈을 끓인다. 이따금 노래를 만들고, 글을 쓰고, 드라마를 보고, 청소도 좀 하고... 근데 나를 위한 일이라는게 참 유통기한이 짧아서 문제다.


음식을 만들면 배부르고 끝, 노래를 만들다 영 퓔이 안살면 포기, 글을 쓰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었다는 걸 알고 접고, 드라마를 보다가 감정이입하고 나면 문득 초라해져서 off. 요즘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데 이게 참 거시기허다.


내가 살아온 시간동안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늘 나와 연결된 나의 밖이었다. 친구, 좋아하는 사람, 가족 등 그들을 위해서 혹은 그들과 함께 가치있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하려는 타입이었다.


그렇게 살다 견디기 힘들어 도망다니곤 했는데 이제는 도망가는 것도 하고싶지 않아서 조금 바꿔보자 한거다. 적당히 마음을 주는 거. 지금이 그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내다보면 혼란스럽다. 좋은지 싫은지도 잘 모르겠고, 괜찮은건지 한심한건지도 모르겠고.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은 뭔가를 묻는다. 대답이 마땅히 없는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하기싫은거라 오해할까봐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지 않아버리게된다.


심심한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것은 ‘마음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멈춰있는거라는 것’이다. 마음을 주지 않으면 기쁨도 즐거움도 우울이나 아픔까지도 없구나. 진짜 삶이 한순간 심심해지는구나 생각한다.


뭘했는지도, 아무것도 안했는지도 모르겠는 하루를 보냈다. 하루에 한가지 일만이라도 해보자. 빵이나 구워먹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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