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3.3
서른 셋에 나이를 먹었다고 말하는게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불과 십년 전에 나름대로 가치있게 불타오르며 행동했던 어설픈 내 모습을 떠올리면 쑥스러운 기분을 느끼는 나이가 되었다. 또 한편 그런 시절이 있어 다행이라고 여기기도 하는.
일상이 종종 극단적인 선택으로 정신없이 흘러갔고 그 안에서 나는 스스로 정립했다 믿었던 근사한 가치관을 열렬히 행했다. 실패했는지도 모르고 실패하고, 성공했는지도 모르고 성공했던 시절. 나의 선택들은 나를 나아가도록 부추기기도하고 더욱 견고하게 가두기도 했다.
그렇게 서른이 넘은 지금 꿈꾸던 서른인가하면 일상 속 가끔씩은 꿈에 그리던 서른의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서른인만큼 평가가 더욱 엄격해지기도 한다는 것이 큰 괴로움이기도 하다. ‘서른이 넘어서도 아직도 이러네’ 싶은 것들이 물에 뜬 기름처럼 사라지지 않고 꼴보기만 싫다. 어쩌면 그런 부끄러운 기름기까지 스스로 걸러내고 버릴 수 있는 시기가 삼십대인지도 모르겠다.
원래도 지나치게 뜨겁고 찬거를 선호하지 않았는데 삼십대가 되니 더하다. 짜고, 맵고, 느끼하고, 얼큰한거보다 담백하고 고소한 맛들이 더 좋다. 오늘의 커피는 조금 연하게 탄 미지근한 아메리카노다. 한 모금을 마시고나니 참을 수 없어 꿀꺽꿀꺽 보라차마냥 원샷을 한다. 크아, 안심된다. 뭔가 안심되. 안심되는 맛이라 너무 좋다. 한잔 더 마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