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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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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Mar 07. 2020

고맙다 월경!

2020.3.7

나는 하루에 한 번 변을 누지 않으면 몸이 전체적으로 축축 처지는 편이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앓고 있는데 약을 제 때 먹지 않으면 바로 변비로 그 증상이 나타난다. 아침에 누는게 가장 좋지만 어쩌다 저녁에 보게되면 그날 하루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던 날이었다. 매일 반복되는데도 항상 ‘오늘 왜이리 축축 쳐지지?’ 이런 생각을 한다. 매일 깜박하는 것.


월경은 더 하다. 한달에 한번 하는 거라 몸에 이상이 있는 것 같으면 월경 때문이라는 걸 더 잘 잊어버리고 원인을 좀처럼 찾지 못한다. 제때 하지 않으면 몸이 쳐진다기보다 피부에 문제가 생긴다. 트러블이 곳곳에 나거나 어딘가 두드러기가 나고 살이 찐다. 생기를 잃은 얼굴 때문에 어디 아프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이번 달은 꽤 오래 하지 않아 초조했다. 네이버 검색을 했지만 월경을 제때하지 않는 케이스는 많아도 나처럼 열흘이나 보름쯤 안해서 불안해하는 글은 없어서 큰 도움을 받지 못했다. 내 몸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채소나 과일을 잘 먹지 않기 때문일까봐 부러 사서 챙겨먹어보기도 하고, 스트레스 때문일까봐 쉬어보기도 했지만 소식이 없었다. 불안했다.


평소에 반신욕을 자주하는 편인데 반신욕을 하면 따뜻한 물이 피돌기를 재촉해 몸이 자기 페이스를 찾는 기분이 든다. 이번에도 월경을 하지 않아 반신욕을 여러번 해봤지만 별 소용이 없는 듯 했다. 반신욕으로도 안되는구나 싶어 채념하려다가 최근 반신욕 물 온도가 평소보다 좀 낮았다는 걸 떠올렸다. 땀이 나지 않고 마르기만 하는 상태였던 것. 나는 온도을 조금 높여 다시 반신욕을 해봤다.


최근 부쩍 쑤시던 손목, 발목에 저릿저릿한 느낌이 들면서 피돌기가 활발해지고 땀이 줄줄 흘렀다. 뭔가 순환되고 있는 느낌. 좋은 징후같았다. 그렇게 반신욕을 마치고 난 그 다음날! 월경이 시작되었다. 몸이라는게 언제나 참 신기하구나. 몸은 순식간에 활기를 찾았다. 어젯밤에는 세수하는데 피부가 보들보들해져 있었다. 몸에 에너지가 생기고 있다. 순환이라는게 이렇게나 중요하다.


나는 달걀과 우유를 먹지 않는 페스코비건이다. 채식이라고 하지만 채소보다는 탄수화물을 더 많이 섭취하게 된다. 탄수화물은 피를 끈적끈적하게 해서 피돌기가 느려지게 만든다고 한다. 식습관을 조금 바꿔볼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고 반신욕에만 의존할 수는 없으니! 웅크리고 쪼그리는 습관이 된 모든 자세들도 조금씩 펼쳐야 관절에도 무리가 안갈 것 같다.


나를 위해 해야할 것이 너무 많다. 몸도 마음도 나의 역사가 만들어놓은 작은 통에 혀있는 느낌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의 안도 나의 밖도 모두 같은 원리로 돌아가는  것 같다. 같은 원리라면 해답도 비슷하지 않을까. 순환이 중요하고, 균형이 필요하고, 어렵고 귀찮고 불편해도 나를 위해 변화 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것. 몸을 보니 내 삶이 보이는 듯하다.


비오는 오후, 새들만 신이난 허공을 바라보며 한숨이 푹푹. 그래도 월경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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