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4.1
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다음날 일이 딱히 없다면 새벽내내 놀거리를 찾는다. 점점 무형의 것에서 유형의 것으로. 자연스레 가치가 변화한다. 보고 만진다는 것도 느끼고 고민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여기게 된다.
내 안에 머물러 곱씹을 때는 내 밖은 복잡한 ‘사람들과의 관계’ 뿐이었지만 내 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나니 ‘자연과의 관계’를 단순하게 느끼게 된다. 무언가 돋아나고 깨어나는 시기인 봄이라서, 그저 단순히 봄이라서 그런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본다. 고작 몇주의 변화가 나의 일상으로 자리잡을 거라는 확신은 갖지 않기로 한다.
자연스러운 것들과 있으니 세상은 단순해지고 일상이 미지근해진다. 막막한 변화나 복잡한 논리는 몰래몰래 추억에 버리고 떠나는 느낌이다. 뜨거워지지 않는 것이 죄스럽다가도 그것마저 버리고 또 버린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나의 대답이 바뀌고 있다.
매거진을 같이 운영한 친구를 떠올린다. 퀴어퍼레이드에서 무료매거진을 나누어주겠다고 메일을 두 차례나 보내고 답신이 없어 일단 들고 찾아가 거절당했을 때 그 친구의 단호하고도 당연한 권리주장에 나는 홀딱 반했었다. 아주 원론적인 질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만든 친구. 나는 그때도 그 친구가 자연스러운 사고를 한다고 생각했다.
자연과 함께 있으면서도 ‘자연스럽’지 않은 사고가 남아있다는 것이 놀라워서 계속 놀라는 일상. 작은 것에 만족하고 작은 것부터 채워가는 몸쓰는 삶.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되도록 스스로 만들어보고 그게 안되면 없이도 살아보는 시절. 꿈 같다. 너무 꿈 같아서 즐겁다. 이 시절, 이 시기에 냉정과 열정의 사이에 있어서, 미지근해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