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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May 22. 2020

이쉽팔점박이무당벌레

2020.5.22

집을 가꾸고 있다. 우리집 개강아지 솔이가 마당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도록 담벼락을 만들려다 일이 점점 커져버린 것. 솔이가 오고 나서 일상이 ‘집’이 되어버렸다. 나에게도 솔이에게도 만족스럽 집을 만들고 싶다는 나름의 목표도 생겼다. 집을 마음에 들게 고치고 정리한다는 것은 내 인생에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몸 하나 누일 곳이 내가 활동하기 편한 곳에 있으면 그걸로 만족했다.


어쩌면 내가 20대 내내 불안했던 건 ‘즐거운 나의 집’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요즘 제법 만족스런 일상을 보내고 있기에 괜스레 이유를 붙여본다. 집 앞 텃밭을 정리하고 가지, 고추, 옥수수를 심을 곳을 구획하고 모종을 심어 싹이 돋아나길 기다리는 이 시간들이 좋다. 해가 뜨고 지는 것으로 시계 삼았던 옛 조상들의 일상이 이해되는 요즘이다.


그렇다고 게으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해가 뜬지 한참 후에나 일어나고 해가지고 한참 후에나 자는 건 여전하다. 하지만 해가 질 즈음 선선하다 싶으면 솔이를 데리고 뒷산에 있는 밭으로 나간다. 해가 저물면 집안일을 시작한다. 집안일이 끝나면 잠이 올때까지 단순한 손놀이를 즐긴다. 뒷산은 이 마을에서 솔이가 유일하게 마음껏 뛰놀수있는 장소다. 오줌싸기, 똥싸기, 파리나 벌과 싸우기, 쥐구멍 찾아 맹렬히 파대기, 꿩과 술래잡기하기 등 솔이는 제법 산에서 다양한 놀이를 찾는다.


그 시간에 나는 밭을 감상하고, 만화책을 읽거나, 놓친 드라마를 본다. 해야 할 밭일이 많아도 해야된다는 강박을 갖지 않기로한다. 내키는 시기를 기다리며,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는 속도를 찾는다. 그냥 게으르게한다는 뜻이다. 게을러도 된다. 그래도 다들 제법 잘 자라고, 더디 자라도 자라긴 자라고, 너희들도 다 때가 있으려니 하니 모든게 동등해진다. 그러나 단 하나.


이쉽팔점박이무당벌레는 좀 거슬린다. 이것들이 가끔 보이는데 여린 잎들에 앉아 있으면 툭툭 쳐서 떨구긴 하는데 두꺼운 잎에 구멍을 송송 낼 정도로 강한 녀석들이 아닌가. 어린 잎이 습격당해 죽기라도 할까 걱정이다. 이것들도 다 살자고 이러는 건데 싶다가도 내 어린 새싹들에게 피해를 입힐까 방어적이 된다. 다른 무당벌레들까지 툭툭 떨궈내버리며 괜히 불안해한다.


얼마 전 하나로마트에서 마주쳤던 어떤 이쉽팔점박이무당벌레같은 아저씨를 떠올린다. 이제 갓 알바를 시작한 듯 보이는 계산원에게 ‘하여간 여자들이란’하며 혀를 차던 그 이쉽팔점박이무당벌레같은 아저씨. 그도 그렇게 된 사연이 있겠지. 내가 어찌 하나하나 다 간섭할 수 있겠나.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다가도 행여 내 주변 아저씨들이 혹시 그런 이쉽팔점박이무당벌레같은 사람이 아닐까 괜히 방어하게 되기도 한다.


방어적인건 어쩔 수 없다. 나도 다 살자고 하는 짓. 이쉽팔점박이무당벌레도, 못된 아저씨들도 나는 다 이쉽팔점박이무당벌레 취급을 할 수밖에 없겠다. 아니 근데, 사람은 말하고, 듣고, 느끼고, 생각까지하면서 왜 못된것을 판단하지 못할까. 잘 보면 사람이 가장 멍청하다. 멍청해! 나는 좀 덜 멍청해져야지. 덜 멍청한 무당벌레로 살아야지. 한 이쉽점박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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