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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Sep 17. 2022

집에 울타리를 쳤다.

손목을 잃고 울타리를 얻었다.

솔이가 온 뒤 집에 울타리를 쳐야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항상 조급했다. 평생 묶여 지내본 적이 없던 아이였다. 그런 녀석에게 줄을 묶어 놓는다는 건 너무 미안한 일이었다. 어디 외출이라도 하고 돌아오면 자기 집에 쪼그려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어쩌면 솔이는 불행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들때마다 울타리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며 산에서 대나무를 해다 엮었다. 철사로 대나무를 엮고 벽에 고정하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고된 일이었다. 트럭도 하나 없는 내가 산에서 내 키보다 큰 대나무를 끈으로 묶어 이고 내려오는 일도 엄청난 에너지를 쓰는 일이었지만 그걸 톱질 해 자르고 또 그걸 반토막 내어 두꺼운 철사로 튼튼하게 엮는 일이란 지금 생각하면 다시 하고 싶지 않은 힘든 일이었다. 


인터넷으로 찾고 찾아 나무로 된 대문을 사서 친구의 도움을 받아 달고, 대나무로 엮은 울타리는 뒷집으로 통하는 길목을 막고, 대문 주변으로는 오래된 시골집 창호지 문살을 얻어와 얼추 막았다. 허술하기는 해도 솔이가 기댈 정도는 되었고 솔이는 탈출하려는 욕구는 별로 없는 친구이기에 가능한 구조물이었다.


그렇게 울타리를 치고 솔이를 끈에서 해방시킨 첫날, 우리가 둘 다 자유롭게 집에서 자고 먹던 그날 나는 스스로가 기특하고, 그 과정을 기다려준 솔이에게 고마워 엉엉 울고 말았다. 그날 참 많이 생각했다. 내가 누군가를 책임지도 있구나.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나는 이런 모습이 되는구나. 하아, 삶이란..


그런데 그때부터 왼쪽 손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악력을 잘 쓰지 못했다.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팔꿈치쪽에서 차가운 통증이 참을만하게 때로 잠을 설칠만큼 이어졌다. 그걸 '엘보'라고 한단다. 무슨 이름이 이리 고급진가, 강아지 이름으로 지어주면 입에 잘 붙고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무튼 그 통증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울타리를 만드는 동안 지속된 요령없는 톱질과 드릴질, 망치질에 더불어 맨손으로 철사를 엮기도 했기때문에 당연한 결과라고 의사가 말했다. 약은 소용없다고 했다. 손을 안쓰는게 답인데 안쓸 수 없으니 평생 달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는 무슨 이에 고춧가루 빼면서 하는 말처럼 가볍고 무심하게 던졌다.


망연자실 한채 유튜브를 뒤적이며 엘보 고치는 방법을 찾아헤맸고 이것저것 따라해보았지만 통증은 계속 남아있었다. 돈도 필요하고 할 일도 태산같은데 큰일이었다. 뭔갈 손에 쥐면 놓치기 일쑤였고 그 때문에 마트 알바를 구해 일한 첫날 냉동만두 여러개를 떨구고 그날로 권고사직(?)을 당했다. 


어떻게든 손을 고쳐야하며, 어떻게든 일도 구해야하고, 공짜로 얻어 임시로 사는 이 집에서도 빨리 이사를 가야했으므로 정신력으로 버티며 지냈다. 엘보 통증이 심해질즈음 나는 테이핑을 하는 방법을 유튜브에서 찾았다. 믿져야 본전으로 테이핑을 시작했다. 


그러자 사흘이 지나면서부터 통증이 가라앉았다. 지금은 무리해서 손을 쓸 때 외에는 엘보 통증은 없다. 테이프가 잡아주기 때문에 크게 무리하지 않는 이상 염증이 자극되지 않았고 그래서 조금씩 회복하며 통증도 가라앉는다는 아주 단순한 원리였다.


울타리로부터 시작된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깨달은게 있다면 세상엔 직접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퀄리티에 돈이 덜드는 일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조금 현명해지지 않았을까. 내가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내 나이 서른 셋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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