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아짐들은 내게 관심이 많다. 뭘 해먹고 사는지, 집은 잘 치우고 사는지, 마당에 풀은 왜 안매는지, 시집은 왜 안가는지. 주변 총각들만 보면 나이고 직업이고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우리 마을 아가씨들 이야길 하시는 것 같다. 그놈의 개새끼만 평생 붙들고 살거냐며 팩트폭력(?)을 일삼는 아짐들이지만 좋다. 사랑스럽다.
건너편 집 사는 영광아짐은 새벽같이 나와 마을회관에 보일러를 켜고, 회관 옆 소각통에 쓰레기를 태운다. 그리고 그 옆에 공동화장실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신다. 나는 일찍 솔이 산책에 나설 때마다 영광아짐과 마주친다. 무슨 플라스틱을 태우냐며, 오늘은 뭘 태우길래 연기가 이렇게 새허옇냐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나를 아짐이 많이 이뻐하시는 걸 안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아짐을 보며 잘 주무셨냐 했더니 대뜸 "옴모메, 나 죽겠네"하시는게 아닌가. 나는 무슨 일이 났나 싶어 반가워 웃던 얼굴을 지우고 무슨일이 있느냐 물었다. 아짐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혀를 차며 나를 지나친다. 나는 왜냐고 무슨 일이냐고 아짐을 붙들었다.
"아야 이 새벽에 개 델꼬 산책가냐고 아주 정성이다 정성이여. 개가 그렇게 좋으냐?"
나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는 놀랐던 마음을 내려놓고 가슴을 쓸었다. 마을 아짐들은 개는 개답게 키우는거라고 묶어놓으라 성화다. 그런 개를 날마다 산책 시킨다니 이해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볼 때 시집도 안간 처녀가 게으르고, 게으른게 산책은 또 부지런히 가고 하니 기가 막히는 것이다.
"그러엄~ 이봐요 얼마나 이쁭가"
- 옴모메, 나 죽것네~
"아니, 뭘 그런걸로 죽는다한대! 깜짝 놀랬잖여!"
- 그럼 죽지 안죽냐! 만날 해만 뜨면 개를 델꼬 나오는데
영광아짐은 샐쭉 웃으며 그런 내가 이뻐 죽겠다는 듯 볼을 쓰다듬는다. 오늘은 어디 안가는지, 김치는 남아있는지, 어디 안가면 점심은 히간(마을회관)에 와서 먹으라는 말을 남기고 아픈 한쪽 다리를 끌며 씩씩하게 집으로 향한다. 나는 오늘 밥은 나가서 먹겠다고 영광아짐 뒤에서 소리치자 아짐은 손을 한번 들어 알았다는 대답을 한다.
영광아짐은 사투리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내가 그게 뭔 말이냐 질문할 때 가장 재밌어하는 아짐이다. 더 고약한 사투리로 나를 놀리는 것도 좋아한다. 그걸 듣고 반응하는 내 모습이 웃긴 모양이다. 다리가 불편해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마당에 잘익은 채소가 있으면 부러 우리 집에 찾아와서 먹을거면 꼭 따다 먹으라며 당부하기도 한다.
가끔씩 볕이 좋은 날 아짐과 단둘이 정자 계단에 앉아 시시콜콜 나누던 대화가 참 좋았다. 내용은 다 시집가라는 말이어도 그 안에 애정과 걱정이 담겨있어 타지에 있는 동안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마을 아짐 대부분이 내게 그런 존재다. 전남 장흥에 내려와서 정착하고 살 수 있었던 이유 중 5-6할은 아짐들 덕이었다. 나도 저토록 사랑스런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참고 = 여기 나오는 아짐들은 대체로 연세 70이상인 할머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