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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Sep 17. 2022

옴모메, 나 죽겠네

아니, 그게 죽을 일이당가

마을 아짐들은 내게 관심이 많다. 뭘 해먹고 사는지, 집은 잘 치우고 사는지, 마당에 풀은 왜 안매는지, 시집은 왜 안가는지. 주변 총각들만 보면 나이고 직업이고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우리 마을 아가씨들 이야길 하시는 것 같다. 그놈의 개새끼만 평생 붙들고 살거냐며 팩트폭력(?)을 일삼는 아짐들이지만 좋다. 사랑스럽다.


건너편 집 사는 영광아짐은 새벽같이 나와 마을회관에 보일러를 켜고, 회관 옆 소각통에 쓰레기를 태운다. 그리고 그 옆에 공동화장실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신다. 나는 일찍 솔이 산책에 나설 때마다 영광아짐과 마주친다. 무슨 플라스틱을 태우냐며, 오늘은 뭘 태우길래 연기가 이렇게 새허옇냐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나를 아짐이 많이 이뻐하시는 걸 안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아짐을 보며 잘 주무셨냐 했더니 대뜸 "옴모메, 나 죽겠네"하시는게 아닌가. 나는 무슨 일이 났나 싶어 반가워 웃던 얼굴을 지우고 무슨일이 있느냐 물었다. 아짐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혀를 차며 나를 지나친다. 나는 왜냐고 무슨 일이냐고 아짐을 붙들었다.


"아야 이 새벽에 개 델꼬 산책가냐고 아주 정성이다 정성이여. 개가 그렇게 좋으냐?"


나는 그제상황을 파악하고는 놀랐던 마음을 내려놓고 가슴을 쓸었다. 마을 아짐들은 개는 개답게 키우는거라고 묶어놓으라 성화다. 그런 개를 날마다 산책 시킨다니 이해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볼 때 시집도 안간 처녀가 게으르고, 게으른게 산책은 부지런히 가고 하니 기가 막히는 것이다.


"그러엄~ 이봐요 얼마나 이쁭가"

- 옴모메, 나 죽것네~

"아니, 뭘 그런걸로 죽는다한대! 깜짝 놀랬잖여!"

- 그럼 죽지 안죽냐! 날 해만 뜨면 개를 델꼬 나오는데


영광아짐은 샐쭉 웃으며 그런 내가 이뻐 죽겠다는 듯 볼을 쓰다듬는다. 오늘은 어디 안가는지, 김치는 남아있는지, 어디 안가면 점심은 히간(마을회관)에 와서 먹으라는 말을 남기고 아픈 한쪽 다리를 끌며 씩씩하게 집으로 향한다. 나 오늘 밥은 나가서 먹겠다고 영광아짐 뒤에서 소리치자 아짐은 손을 한번 들어 알았다는 대답을 한다.


영광아짐은 사투리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내가 그게 뭔 말이냐 질문할 때 가장 재밌어하는 아짐이다. 더 고약한 사투리로 나를 놀리는 것도 좋아한다. 그걸 듣고 반응하는 내 모습이 웃긴 모양이다. 다리가 불편해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마당잘익은 채소가 있으면 부러 우리 집에 찾아와서 먹을거면 꼭 따다 먹으라며 당부하기도 한다.


가끔씩 볕이 좋은 날 아짐과 단둘이 정자 계단에 앉아 시시콜콜 나누던 대화가 참 좋았다. 내용은 다 시집가라는 말이어도 그 안에 애정과 걱정이 담겨있어 타지에 있는 동안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마을 아짐 대부분이 내게 그런 존재다. 전남 장흥에 내려와서 정착하고 살 수 있었던 이유 중 5-6할은 아짐들 덕이었다. 나도 저토록 사랑스런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참고 = 여기 나오는 아짐들은 대체로 연세 70이상인 할머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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