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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Sep 17. 2022

이 지랄거, 시집이나 가

상금아짐은 못말려

마을에서 밥을 먹는 날이 있다. 워낙 작은 마을이라 다른 마을에 비해 자주 모이는 편이다. 나도 두번에 한번 꼴로 참석을 한다. 바로 집 앞이기도 하고 아짐들이랑 놀고 싶기도 해 가긴하는데 잔소리를 많이 듣는다는 것. 그것이 참 불편하다. 행여 그 자리에 "장가"를 가지 않은 남자사람이 있으면 더 불편하다.


 나는 이 마을에서는 어른 취급을 못받는지라 심부름 담당이다. 이 상 저 상으로 밥 배달, 국 배달, 반찬 배달 하다보면 정신이 없지만 그 와중에도 내가 꼭 놓지 않으려는 건 아짐들 밥상에 맛있는 음식을 먼저 놓는 것! 이 마을은 아직도 가부장 사회라서 아재들이 안방에 큰 상에 앉고, 아짐들이 마루에 작은 상을 붙여 모여앉는다.


아짐들은 밥과 고기, 메인반찬 같은 것들은 제일 먼저 아재들 상에 놓으라고 다. 처음에는 아무생각없이 빈 상을 채우면 그만이라 생각했지만 그러면 안되겠다 싶었던 계기가 있었다. 귀한 반찬들은 양이 적어서 남자들 충분히 주고 남는 걸 아짐들이 먹어도 된다는 뜻이라는 걸 알았던 때였다.


처음엔 반항했다. 마지막 소고기 한접시마저 아재들 상에 놓으라는 걸 "그럼 아짐들은!"하며 대들었다. 그때 아짐들이 하나가 되어 "우리는 안먹어!" 했을 때가 기억난다. 나는 결국 반찬을 뺏겼다. 아짐들이 스스로를 홀대하는 게 속상했다.


마을 잔치나 제사, 식사시간에 가만히 보고있으면 일하는 건 다 여자다. 아재들은 젊건 늙건 다 앉아있는게 당연했다. 서울에서 왔어도 그런게 남아있는 모임도 있었기 때문에 크게 놀라진 않았지만 잘못된거라고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솟구다.


렇게 몇번 하니 요령이 생겼다. 맛있는 반찬들을 아재들 가져다주라하면 아짐들 상에 놓는 것이다. 아주 자연스러워서 한 번도 걸린적이 없었다. 다만 상에 올려진 걸 보고 옮겨진 적은 여러번 있었다.


아재들도 부담스러워 할 때가 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때도 있는 것 같다. 뿌리깊은 가부장제와 남성우월주의는 이런 시골마을에서 자주 목격된다. 맨 퍼스트가 너무 익숙한  심술이난다. 이건 아주 합리적 심술이다.


마을에 있다보면 어렵지않게 아짐들의 결혼 생활을 엿들을 수 있다. 시어머니가 어쨌네, 남편 술버릇이 어쨌네하며 유물처럼 오랜 이야기를 어제 일처럼 말하시곤 한다. 끔찍한 시집살이와 흔하디 흔했던 남편들의 폭력, 양육과 집안일, 밭일까지 도맡았던 옛날 옛적 그 소녀들이 아프다.


마을 아짐들 중 상금아짐은 나에게 시집가라고 가장 적극적이고 '강렬'하게 말하는 사람 중에 한 분이다. 아짐은 일찍이 남편을 보내고 혼자 지낸 세월이 아주 길었다고 했다. 그래도 결혼을 하는게 좋다고 말한다. 나는 괜히 심통이나서 아짐한테 "아짐은 결혼해서 좋았? 힘들고 괴롭고 그랬다면서!"


- 난 좋았지. 말도 쳐 안듣고 만날 싸우고 지랄해도 그 정이 좋았제


"그렇게 나도 평생 싸우면서 살게되면 어떻게!"


- 그래도 같이 있는게 좋아. 내 못하는거 다 해주고 얼마나 고마워. 나도 저 못해는거 해주고 고마워지면 사는거여


걸걸한 상금아짐에게 그런 살랑살랑 봄바람같은 말을 듣게 될 줄이야. 나만보며 이년 저년하던 아짐은 아직까지 남아있는 그 고마운 마음을 나도 느껴봐야 된다고 했다. "그니까 만날천날 개나 붙들고 있지말고 결혼이나 해! 이 지랄거"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진 상금아짐, 역시 마무리 강렬한게 아짐 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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