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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Sep 17. 2022

오지 마! 저리 가!

비명소리 가득했던 어느 봄날 뒷산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게는 끔찍했던 시골집에서의 첫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솔이는 매일같이 산에 가기를 기다렸다. 산책 시간즈음 되면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내게 먹히는 걸 아는 똘똘한 녀석이었다.


솔이가 겨울에 빈 논에서 눈 밟으며 뛰어노는 것을 무진장 좋아한다는 것을 여기와서야 처음 알았다. 봄이 되니 땅 아래 열심히 뚫어놓은 쥐들의 굴을 파헤치는 것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산에 다녀올 때면 솔이의 주둥이부터 앞 발까지 흙이 안 묻은 곳이 없었다.


물을 끔직히도 싫어하는 녀석이라 돌아와 또 언제 닦이고 앉았나 생각하며 터덜터덜 산을 향했다. 길을 안다는 듯이 항상 가던 그 길을 씩씩하게 앞장서는 솔이였다. 산 초입에서 끈을 풀어주면 멀리까지 뛰어올라갔다가 다시 돌아와 내 속도에 맞추며 다시 오르는 사랑스러운 녀석이다.


어느정도 지점에 도착해 내가 마을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으면 그때부터 솔이의 탐색이 시작된다. 그날도 산에 아무도 없을 것이라 예상하고 나무 그늘 아래 앉으려던 찰나 멀찍이서 빽빽 소리를 지르는 아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깜짝놀라 소리나는 쪽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그날 옆 마을 아짐들까지 동원해 동네 아재 마늘 밭에 풀을 매러 우르르 오셨던 것이었다. 아짐들은 솔이를 알고 있었지만 산 만한게 다가오니 무서우셨던 모양이다. 호미며 나뭇가지며 마구 던지면서 솔이에게 오지 말라고 소리를 치고 있었다.


나는 솔이를 큰 소리로 부르며 오라 했지만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녀석이라 어떻게든 다가가려 했다. 그때 마을 아재가 일어나 긴 나뭇가지로 바닥을 치며 주먹만 한 돌을 사정없이 솔이에게 던져댔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솔이를 부르다 말고 아재를 향해 하지말라고 꽥꽥 소리를 질렀다. 내 생애 질러본 최고 간절하고 큰 소리였을 것이다.


화가 났다. 겁도 났다. 솔이는 내가 질러대는 소리를 듣고 다가가던 걸음을 멈추고 내쪽으로 돌아왔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솔이가 다쳤을까 여기저기 살폈다. 다행이 솔이도 사람도 다치지 않았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움켜쥐고 아재에게 한번 더 큰 소리를 쳤다. "아니! 그렇게 큰 돌을 막 던지시면 어떻게 해요! 죄송해요! 죄송하다고요!"


내가 주의깊게 살폈어야 했다. 사람이 언제든 들락날락 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 그들은 산에 다니는 솔이 만한 개를 무서워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건 명백한 내 잘못이었다. 사람이 다쳤다면..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솔이가 다칠까봐 두려운 마음과 마을 사람들을 향한 죄송스런마음이 교차해 화가나 소리를 치면서 사과를 한 것이다.


마을 아짐들과 아재는 솔이에게 그렇게 대했던 것에 조금 겸언쩍었던 모양인지 말없이 금세 다시 자리를 잡고 밭을 매기 시작했다. 아재는 "아유 무서우니까 그랬제"하며 터덜터덜 자리도 돌아가셨다. 나는 그 모습에 미안하고 속이 상해서 솔이를 데리고 산에서 내려왔다.


집에 돌아 온 솔이는 똥 한번 제대로 싸지 못한 것이 불편했는지, 아니면 내가 걱정이 됐는지, 미안했던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날따라 멀찍이서 나를 바라보며 몽글몽글한 표정을 지었다. 에휴,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앞으로 이런 일이 없으리란 법이 없는데 나, 이 마을에서 잘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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