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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Sep 17. 2022

개솔이와 (도둑)산책

미친개솔이와의 밤산책 포기선언

낮에 산책시키는 건 영 자신이 없었다. 집이 마을 한가운데 있어 문만 열면 마을 정자였고 담 너머엔 마을 회관이었다. 아짐들은 항상 정자에 모여 티비 소리를 크게 해놓고 그보다 더 큰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어느 아짐들끼리 싸웠는지, 어느 아짐이 오늘 내일 뭘 심을건지, 오늘 노인일자리는 어느 아짐이 하시는지 청력이 좋은 나는 집에 앉아 시시콜콜한 마을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날이 따뜻하니 낮 산책을 하면 좋으련만. 덩치 큰(보통 진돗개보다 더 큰) 개솔이를 데리고 다니면 어김없이 이목이 집중 될 터였다. 그 잔소리들을 다 들어야하는게 그때는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여름엔 밤 산책을 다녔고 그 습관은 가을까지 이어졌다. 그날은 여느때와 비슷했다. 적당히 선선해진 날씨와 선명해진 달빛에 괜히 옛사랑을 떠올리며 센치해지고 있었다.


그러다 솔이가 갑자기 멈춰 꼬리를 흔들며 놀 때 나오는 파닥파닥 자세를 취했다. 무언가를 향해 웅크렸다, 섰다, 돌았다를 반복했다. 깜깜해 내겐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았다.


평소에 비료 더미만 봐도 짓거나 화들짝 놀라는 녀석이 땅바닥에 있는 뭔가에 신나 날뛰는 모습은 나를 몹시 당황스럽게 했다. 감정기복이 없는 개솔이가 뭘 저리 좋아하나, 괜찮은거면 하나 집에 가져다 놔야지 생각하면서 핸드폰 플래시를 켰다.


그러자 일순 또아리를 튼 뱀 한마리가 입을 하악 벌리는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재빨리 솔이 하네스를 당겼다. 얼마나 세개 당겼는지 그 산만한 솔이가 거의 이족보행 동물의 모습이 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솔이가 코가 그 녀석의 입으로 들어갈 뻔 했으니까.


나는 순간적인 힘을 줬기 때문인지 기운이 쭉 빠져 뱀에 플래시를 고정한 채 멀찍이 주저 앉았다. 힘도 없는데 개솔이는 구애라도 하는 냥 뱀한테 꼬리를 흔들며 가고 싶어 안달을 했다.


뭐 이런 개(노므자슥)가 다 있지.


그 이후 한 차례 더 그런 일을 겪고는 밤산책을 포기했다. 그래 솔이가 뱀한테 물리는 것보다 내가 잔소리를 견디는게 더 낫다. 솔이는 그렇게 낮 산책과 더불어 뒷산에서 하네스없이 마구 뛰어노는 자유까지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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