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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Oct 24. 2020

다대기 슥 풀고 들깨가루 솔솔 뿌려서

지키고자 한 것을 지키는 자의 바른자세

과연 50년 전통이었다. 다대기를 반수저 떠 슥슥 풀고 들깨가루를 듬뿍 뿌려 살짝 걸죽해진 순대국에 밥을 쿡쿡 찍어 말아 떠 먹는 그 첫술. 그 맛은 씹어 넘기는 동시에 다시 빈곳을 채우고 싶도록 만드는 맛이었다. 순삭, 먹방, 흡입 그 모든걸 가능하게 만드는게 내게는 이 집 순대국이었다. 한그릇은 충분한 양이었는데 두 그릇째 시키는 사람도 본 적 있다.


나는 그 집에 자주 갔다. 순대국집 문앞에는 빨갛고 크게 새겨진 글자가 있었다. ‘50년 전통’ 항상 번들번들한 그 글자가 의미하는 것은 역시 순대국이었다. 그 글자는 근처에 가면 잘 보이긴 했지만 멀리서도 눈에 뜨일 만큼은 아니었다. 주인은 광고를 더 하는 대신 그 글자를 수시로 닦아댔다. 글자에서는 주인이 불어넣은 다짐과 자존심 그리고 그 무게 만큼의 책임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때로 그런 책임은 어떤 이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처음엔 그 순대국 집 주인이 그래보였다. 예전에 계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며느리가 물려받아 장사를 이어갔다. 며느리는 목소리도 덩치도 큰 사람이었는데 말이 없었다. 오직 말은 주방안에서 주문을 확인할 때와 어쩌다 계산을 할 때였다. 


그렇지만 그 집 주인의 삶은 짓눌려진게 아니라 선택이라는 것을 처음 느꼈을 때가 있었다. 주방에서 갓 만든 김치 맛을 보더니 "나도 이제 어머니 맛이 조금 나는 것 같아" 라며 행복하게 웃는 얼굴을 본 후 부터였다. 주인의 모든 행동들이 달리보였다.


최근 자주 그 집 순대국이 떠올라 혼이났다. 마트에가서 cj의 봉지로 파는 순대국을 한참 바라보며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한 적도 있었다. 그때 주인이 떠올랐다. 전통을 이어가는 묵직한 모습. 자신이 지키기로 한 것을 지키는 자의 단단함을 닮고 싶었다.


나는 마트를 나오는 동안에도 다시 들어가 순대국 봉지를 낚아 채올까 고민했다. 하지만 100년을 산 소나무에게도 풀잎같은 시절은 있었을 것이라며 위안삼았다. 순대국을 먹는 상상을 하고 잠을 못이루는 밤에는 순대국 비슷한 거라도 먹겠다 얼큰한 국물을 끓이게 된다. 살은 떠날 때가 되면 떠나가실 것이고 나는 부른 배를 문지르며 꿀 잠을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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