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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Aug 25. 2020

미각이 살아나다

새로운 재주를 찾았다

어떤 요리든 잘 따라했다. 어깨너머로 대강 봐도 비슷하게 만들 수 있었다. 나는 그게 재주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는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음식을 맛으로 선택하지 않았고, 크게 고집도 없었다. 내게 가장 곤란한 질문이 아직도 ‘뭐 먹고 싶어?’ 인것도 그 때문이다.


맛이 있든 없든 그냥 먹을 수 있었다. 오래도록 비염을 달고살았기 때문인지 맛을 모르고 먹은 일이 수두룩했다. 먹는 즐거움을 삶의 큰 의미로 두지도 않았다. 물론 가끔 고집스럽게 줄창 한놈만 먹기는 했다. 어떤 음식에 꽂히면 주위에서 다 눈치챌만큼 그 음식에 집착했다. 동생은 그 모습을 보며 처음엔 신기해하다가 혀를 내두르며 진저리치곤 했다.


비염이 사라지고 음식 맛을 자세히 느끼게 됐다. 그리고 그 식재료가 음식에 어떤 맛을 만들어내는지 알고 있었다. 그 기억력은 음식을 먹을 때보다 만들때 유용했다. 신맛을 다스리는데는 된장이 좋고, 깊이 없는 짠맛을 감찰맛으로 바꾸는 데는 설탕이 좋다. 육수도 깊도 간도 맞는데 풍미가 부족하면 간장을 조금 첨가하는 것도 좋은 해결방법이었다.


이게 정석이 아닐지라도 이렇게 요리를 할 때 내가 사용하는 방법이었고 대체로 맛에 대한 반응은 좋은 편이었다. 먹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간을 세게 하기도 하고 담백하게 하기도 했다. 매운 반찬이 있으면 담백한 국물이 좋고, 칼칼한 국을 선택했다면 삼삼한 반찬 한 두개 정도는 있는게 만족스런 식사에 좋았다. 이런 센스같은 건 어디서 배우지 않아도 잘 했다.


나는 요리는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건을 시작하고 요리하는 일이 많아졌다. 내가 한 요리를 먹으며 친구들이 좋아했던 경험이 쌓여갔다. 집에서 사부작사부작 하면서 친구들에게 선물하기 좋은 게 요리였기 때문이었는지 나는 자주 주방에서 뭔가 만들어냈다.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종종하는 말이 이해가 됐다. 사람들이 내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행복해진다는 말. 요리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도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 요리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 나는 친구들을 위로하고 돕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래퍼 루피가 어느 유튜브채널 심리상담 중이 이런말을 한 적이 있다. 상담사가 “내가 행복하려면 고독해야한다고 쓰셨는데 그건 어떤 의미에요?”라고 물었다. 그때 루피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행복하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타인의 행복이에요. 동생들이 슬픈일이 있어서 슬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때부터 불행해져요. 그걸 모르면 행복한거에요. 그래서 혼자있어야 되요.” 나는 이 말을 듣고 꼭 내 이야기 같았다.


나만 행복한 것을 나는 견딜 수 있을까. 알고도 모른척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렇게 안될 것 같다. 함께 행복하기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해왔다. 항상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지만. 사회이슈매거진을 만들던 시기에 친구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넌 슬픔 중독증 같아.” 나는 그 말에 혼란스러워졌다. 입으로는 항상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하면서 슬픔중독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제야 그 실마리가 조금 풀리는 것 같다. 나는 주변의 슬픔을 알고도 나만 행복하지는 못하는 사람인 것 같다.


요리는 함께 먹고 나눠먹는다. 그 요리로 인해 그곳에 있는 모두가 행복하다는 표정을 짓는 것이 기뻤다. 맛을 잘 못보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기분도, 생각도 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이걸 ‘재주’라고 여기기로 했다. 나는 맛보는 재주가 있다. 이 재주로 요리를 해서 친구들을 잠시나마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비건을 해서 다행이다. 비염이 나아서 다행이다. 음식을 해먹게 되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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