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는 곡식이라구요
채식을 한다고 한 다음부터 엄마는 몇번이고 “채식한다는 애가 밀가루는 왜 먹냐?” 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밀가루가 고깁니까?’ 따지고 싶었지만 채식을 건강때문에 한다고 생각하는 엄마의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차근차근 설명했다.
밀가루는 곡식이지만 탄수화물이고 한국인들에게 밀가루는 끊어야 건강해진다는 인식이 강해서 건강을 생각한다면 안먹는 걸 당연시한다. 어느날은 크림이 잔뜩 들어간 비건디저트를 먹다가 엄마의 눈치를 본적도 있다. 방구석에 쪼그려앉아 먹는 것은 희귀한 비건디저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속으로 울부짖었다.
채식을 한다고 해서 꼭 채소만 먹는 건 아니다. 우리는 밥도 먹어야 하고, 소금, 설탕 들어있는 짭쪼롬, 달달한 것도 먹어야한다. 건강때문에 채식을 시작한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나처럼 동물권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한 사람들에게 채식의 목적은 건강이 아닌 경우가 많다.
평소 생채소나 과일을 즐겨먹지 않던 나같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채식이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과도한 탄수화물을 섭취해 배를 채우기 때문이다. 밥집에 가도 고기 들어간것들을 하나하나 빼다보면 나물 몇가지에 밥만 가득 먹고 나오기 일쑤고, 김밥집에 가서도 햄, 달걀, 맛살과 어묵 등을 전부 빼달라고 주문한 걸 재확인하고 또 한 뒤에 먹는다.
달달한 떡이나, 기름에 튀겨 나온 채소튀김, 달걀이 들어가지 않은 빈대떡을 먹기도 하고,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빵이 있다면 그것도 식사대용으로 먹는다. 찾아다니며 먹는게 귀찮아 집에서 만들어 먹는 사람들도 많은데 잘 만들어먹으면 근사하게 차릴 수 있지만 바쁜 현대인에게 가장 간편한 비건음식 역시 주먹밥정도다.
채식 식당은 비싸고, 채식빵집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요즘은 하나 둘 생기고 있다지만 내가 채식을 시작했던 시기에는 밥집가서 백반 시켜놓고 육류가 안들어간 것만 골라먹거나 불편하고도 상세한 주문을 하기 일쑤였다. 그런 환경에서 나같은 비건은 살이 찔수밖에 없다.
“너는 채식한다는 애가 점점 살이찌냐?” 엄마는 정말이지 당최 신기하다는 눈으로 내 몸매를 훑어보며 말했다. 설명하기도 귀찮아졌을 무렵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세상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듯 답했다. “그르게 이제 집에서 고기냄새만 나도 살이찌나봐~”
설명할 일이 많고, 먹을 건 없는 채식생활. 이 고된 과정때문에 채식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부디 채식인들이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며 잘 먹고 잘 살수 있게 질문 적당히 받으며 지낼 수 있도록, 채식 한다고 당당히 말도 못하고 알러지라고 뻥치지 않을 수 있도록 채식 감수성이 온 나라에 풍성하게 해주세요.
세상 모든 음식점이여, 이 가여운 채식인들을 위해 1식당 1비건메뉴 만들어줄 수 없을까요? 비나이다 비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