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삶을 위한 길고 긴 여행 / 조금 이상한 사랑이야기
도무지 남성과 섹스할 자신이 없다. 누군가와 연애를 한다는 것은 그와 섹스까지 해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럴 것 같다. 내가 섹스를 안해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첫 섹스가 끔찍했기 때문에 누구와도 섹스를 상상할 수 없었다.
하고싶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할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섹스를 하면 싫어질 것 같았다. 그 사람과의 섹스가 행복감이나 사랑스러움보다는 모욕감이나 두려움을 느끼게 될 거라고 나는 거의 확신했다.
그런 생각이 지배적인 상태에서 내가 선택하기 가장 쉬는 것은 연애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애인이 필요하면 은근히 썸만 탈 수 있는 가벼운 친구들을 만나거나 나를 좋아할 것 같지 않은 사람을 짝사랑했다.
이런 말을 하면 대부분 어떻게 사랑을 선택할 수 있냐고 하지만 그땐 그게 됐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누군가의 좋은 부분만 보고 그 마음을 키워가는 것이 나는 가능했다. 그 상대를 좋아한다고 주문을 걸면 정말로 그 비슷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일지라도 진실은 아니다. 진실은 그를 좋아했고 연인같은 설렘을 나는 종종 느낄 수 있었다. 이제와서 그 감정을 부정 할 순 없다. 심지어 나는 질투도, 슬픔도 강렬하게 느꼈다.
하지만 그 짝사랑 상대가 나를 싫어하거나,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을 느끼면 나는 그 마음이 곧 잘 식어버리곤 했다. 쉽고 빠르게라고 할 순 없지만 보통 일정기한이 지나면 말끔히 사라졌다. 지난 기억을 들춰보니 그랬다는 것이고 당시에는 그런 의도나 마음을 늘 상기하고 있진 않았다.
그런데 그 기억들엔 내가 인정하기 어려웠던 공통점이 있었다. 그렇게 누군갈 짝사랑하기 전에 너무나 잃고 싶지 않은 친구를 격렬히 생각했다는 것이다. 때때로 진짜 깊은 마음은 언젠가 깨어질까 너무 두려워서 아예 미리 깨뜨리기도 하는 모양이다.
잃을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을 잃지 않기위해 다른 사람을 찾는 것이 나의 사랑 방식이었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안타깝고 제법 억울하며 지지리도 못났다 싶다. 얼마나 상처받고 싶지 않았으면 그렇게 두터운 방어를 하며 살아왔을까.
나의 경험들이 나를 만들어왔고, 나는 어쨌든 그것들을 감당하며 살아가야한다. 나는 내 삶의 경험들이 너무나 부담스럽고 무거워서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어질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