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한 사랑이야기 1

완벽한 삶을 위한 길고 긴 여행 / 조금 이상한 사랑이야기

by 해와

스무살 처음으로 남자친구가 생겼다. 함께 어울려다니던 친구들 중 한 명이었다. 어느 야심한 시각 우리집으로 찾아온 그 놈의 고백을 넙죽 받아버렸다. 나는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었고, 조금 설레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날부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하고 TV와 소설로만 보았던 '연애'라는 것을 시작했다.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에, 누군가가 날 좋아한다는 것에 기뻤다. 하지만 주변에서 친구들이 우려하는 게 있었다. 20여일 뒤면 그 놈이 군대에 간다는 사실이었다. 난 알고 있었지만 그게 뭘 의미하는지는 몰랐는데 친구들이 말해줬다. 군대가기 전에 여자와 자고 싶었다거나, 군대에서 사랑의 편지를 주고 받을 상대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친구들의 우려가 당시에는 기분 나빴다. 걔가 진심으로 날 사랑해서 고백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들이 나를 사랑할리 없다는 질투나 무시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솔직히 신경쓰이긴 했지만 그냥 믿기로 했다. 내가 좋아한다고 고백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던 것 같다.


나는 그 놈과 남자친구와 해야 한다는 것들을 다 했다. 동물원에 도시락 싸들고 가서 함께 먹기, 친구 커플들과 다같이 놀러가기, 늦은 시간엔 집까지 바래다 달라고 하기, 모텔가기 등이었다. 그걸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겠으나 그랬다. 나는 연애가 어떤감정인지 알 수 없었고, 뭔가 하면 그게 연애인 줄 알았던 것 같다.


경험이 많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던 그 놈이 떠오른다. 그러면서 나와의 관계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에 따르는게 '여자친구의 도리'라고 생각했고, 그 놈도 그렇게 여기는 듯했다. 얼마 못가 우리는 여행을 갔고 거기에서 첫 섹스를 했다.


나는 섹스가 뭔지 알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행위가 무엇을 어디에 넣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나는 섹스가 좋고, 나쁨보다는 두려움이나 역겨움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자친구와의 관계이기 때문에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 느낌이 없었다. 그냥 낯설었고, 통증보다는 불쾌함이 컷다. 몇 번 하면 좋아진다는 친구의 조언을 믿고 그렇게 그 놈과 몇 번을 잤지만 실패했다. 점점 불쾌함과 역함이 날로 심해지기만 했다. 그 놈은 섹스 할 때 아주 열심이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내가 아무 감정이 없는 섹스토이 같다는 느낌만 받았다.


그렇게 20여일이 지나 그 놈이 군대에 갔다. 군대에 가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는 이 놈을 좋아하지 않는구나. 100일이 가까워왔을 땐 거의 확신했고, 100일이 되기 3일 전에 이별을 통보했다. 전화로 말했기 때문에 나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 내겐 큰 위안이었다. 그 놈은 내게 욕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울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미안하다는 말만 하고 끊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그 놈이 백일휴가를 마치고 돌아간 후에 친구들을 만났다. 그때 나는 친구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걔가 나한테 여자로 보인다고 했어. 난 욕해주고 말았지만." 나는 그 순간 예전 친구들의 말들이 생각났다. 군대가기 전에 섹스를 하고 싶었거나, 군대에 가서 사랑의 편지를 주고 받고 싶어서 고백했을지 모른다는 말.


그게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 같았다. 정말 맞다면 걔는 목적은 달성 한 것이었다. 섹스도 했고, 얼마 간 사랑의 편지도 주고 받았으니 말이다. 나는 완벽하게 이용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아무도 믿지 못했다. 연애에 노련한 것 같은 사람을 기피했고, 그런 사람을 좋아하게 될 때는 일부러 다른 사람을 좋아하기위해 애썼다.


피해의식, 피해망상이 매우 심했기 때문이었다. 그 놈과의 만남에서 나는 최선을 다해 '여자친구의 도리'를 하려 애썼기 때문이었을까. 그런 만남이 두번 다시 없도록 하기위해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기로 했지만 '진심'으로 대하다 좋아진 사람이 노련한 사람일 때는 그 마음을 극렬히 거부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사귀고 싶지 않았다기보다 더이상 누군가에게 놀아나고 싶지 않았다. 어떤 관계에서든 나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나를 마음대로 하려는 사람들을 싫어했다. 그게 심해져 아주 작은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내 생각을 모르면서 떠드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표현해왔고, 그 과정에서 나를 떠나는 이들도 많이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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