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미투, 성정체성, 성역할에 대한 단상.
나는 태어나자마자 '여성'을 부여받았다. 성정체성만 부여받은 게 아니라 성역할도 부여받았다. 초등학교 때 나는 여자는 일자로 걸어야 하는 줄 알았다. 엄마가 팔자로 걷지 말라고 혼을 냈기 때문이다. 티비속에 나오는 소위 '멋진 여성'들은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뽀족구두를 신고 일자로 걸었다. 그걸 따라했을 뿐이었다.
근데 나는 아직도 팔자걸음이다. 엉덩이도 안 빼고 걸어서 등까지 구부정해졌다. 나는 발육이 빨라서 어릴 때부터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할까봐 가슴을 숨기고 다녔다. 그러니 오죽 구부정하겠는가. 나는 차라리 '남자'를 하겠다고 남자친구들처럼 하고 다녀 본 적도 있다. 근데 그것도 참 별로더라.
중학생 쯤 되어서 생각했다. 둘 다 선택 안할 수는 없나? 둘다 싫은데... 나는 화장을 하거나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정돈 하는 것은 안하고 싶었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누굴 위해 해야하는지 몰랐다. 무엇보다 친구들이 '오~ 좀 꾸미고 왔는데?'라고 아는 척하는 게 싫었다. 그냥 좀 모른척하지 꼭 그러더라.
여자 같아보이고 싶지도 그렇다고 남자처럼 보이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딱히 꾸미지 않은 것인데 엄마는 '여자니까' 꾸미라고 했다. 그것때문에 아직까지 엄마와 결투를 하고 있다면 믿을까? 아마 나 같은 사람이 더 있을 것이니 믿을 수도 있겠다. 관심이 없는데 어떻게 꾸준히 챙기나. 꾸미기 같은건 내게 일이다.
그렇다고해서 내게 내 나름의 멋이 없는 건 아니다. 종종 기분이 좋을 때 포인트 악세서리나 신발을 착용한다. 그것만으로 나는 스스로 감각적으로 보일 때가 있는데 그럼 만족스럽다. 그걸로 충분하다. 피부가 쌔카맣게 태어난 것을 썬크림을 한통을 들이 부운 들 새하얘지나? 선크림 전쟁은 아직도 계속된다.
엄마는 포기를 모른다. 수많은 엄마들이 그럴 것이다. '여성'이 무엇인지, '여성의 성역할'은 누가 부여했는지 조차 진지하게 고민해 본 일이 없다. 그런데 이게 뭐 엄마들의 문제일까. 우리 엄마의 인생을 이야기하자면 부당함과 불평등, 집안의 가난함과 여성에 대한 억압으로 점철된 극한의 인생이었다. 그런 엄마를 욕할 순 없다. 아니, 욕하기 어렵다. (하지만 욕하고 있다.ㅋㅋㅋ)
엄마와 나 모두 '너는 여성이다.' 라고 배웠고, 그 이유를 알려준 사람이 없었다. 너는 여성이니까 이래야 한다고 어른들이 말했을 때 왜냐고 물으면 "다 그런거야."같은 말도 안되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럼 우리는 "아! 그렇구나!" 해야만 한다. 다 그런거라는 대답에 어떤 토를 달 수 있나. 다른 사람들도 다 이유가 있으니까 그렇게 하는 거겠지, 미천한 나는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지 말자. 귀찮다, 귀찮아. 하는 수밖에.
여성 뿐만 아니다. 남성도 마찬가지다. 너는 남성이고, 남성이니까 이래야 한다는 말에 "네~네~" 할 뿐이다. 고민하고 결정한 권한은 태어날 때부터 없었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결정하려하겠는가. 다들 그렇다면 그런것이고, 아니라면 아닌 것이고 그렇겠지. 그 모든 과정이 나는 페미니즘과 최근 미투 운동과 연결이 되어있음을 안다.
여성, 남성, 간성, 바이젠더, 젠더플루이드(미천한 나는 아직 이정도의 성정체성밖에 모르지만 훠얼씬 더 많다.) 등 수많은 젠더들 중 내가 선택할 수 있다고 배웠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졌을 것이다. 이름이 없는 무성의 상태로 있다가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선택할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여성 / 남성의 이분법 속에서 진실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운 상황에는 놓이지 않았을 거다.
그렇다면 내가 어떤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든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 세상의 수많은 섹슈얼에 대해 이토록 깊은 오해는 없었을 것이다. 개개인의 문제는 아니지만 개개인들 중 의문을 가졌던 사람들은 그 오해에서 머무르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왜라는 질문은 모든 문장,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들에게 던지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깊이 파고들다보면 페미니즘이 남성들사이에서 악의 근원처럼 작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들의 인생에 페미니즘이 위협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위협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많은 이들에 의견을 수용하는 쪽이 편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정말 그런가보다'하는 것이겠지.
'왜'라는 질문은 습관이다. 왜라고 질문을 해야 대답을 들을 준비가 되기 때문이다. 대답에 대해서도 지치지 않고 이유를 들여다봐야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받아들임의 과정이다. 나는 무조건 비판적이고, 무자비한 말들을 쏟아내는 것은 영 불편해한다. '남'의 인생을 나쁘게 말하는 수많은 그들을 보며 그냥 피하고 싶다는 생각만 강렬하다. 그래, 네네~ 하다가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다.
페미니즘은 일단 여자, 남자로 가르는 영역이 아니다. 사람을 오롯이 사람으로 보자는 이야기다. 생물학적으로 부여받은 성역할 따위 버리고, 그냥 사람의 역할을 하자고 하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들 들여다보고 진짜 나를 찾자는 이야기다. 페미니즘이 뭔지 모르겠으면 일단 태초로 돌아가보자. 나는 왜 남자 혹은 여자인가. 그 이름뿐인 것에 나는 왜 이토록 집착하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