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한 사랑이야기 2

완벽한 삶을 위한 길고 긴 여행 / 조금 이상한 사랑이야기 2

by 해와

첫 남자친구와 헤어진 이후 그때만해도 그렇게 끝이 난 것에 대해 크게 게의치 않았다. 충격적이긴 했지만 그것이 내게 어떤 상처를 남길 수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해서 어서 잊고 싶었고, 의연한 척 하기 바빴다. 사실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 이후 연애에도 크게 관심갖지 않았다.


관심을 표현하는 사람들은 있었으나 마음이 가지 않았다. 항상 외롭기는 했기 때문에 그냥 사귀어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가벼운 관계는 상처를 남기기 마련이었다. 앞으로 절대 가벼운 관계를 만들지 않겠노라, 가벼운 상대에게 마음을 주지 않겠노라 했던 다짐을 떠올리며 늘 거리를 두려고 했다. 급하게 누군가 좋아한다던가, 관심을 표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상대를 알기위해, 상대한 안전한 사람(나를 가지고 놀거나 말과 마음이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길고 깊은 대화를 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보통 상대가 그걸 별로 원치 않았다. 상대들은 대체로 깊고 진지한 대화가 지루한 것 같았다. 나는 오히려 관계에 선을 그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반응이 차라리 나았다.


첫눈에 반하는 일은 없었지만 이야기를 나눌 수록 마음이 생겨나는 사람들은 있었다. 오래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한편으론 다행이었지만, 내겐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관계로 접어드는 것은 끝을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마음을 눈치 챈 순간부터 나는 좌불안석이었다. 보고싶은 마음과 거부하는 마음 중간 어디쯤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런 사람이 두 사람쯤 되는 것 같은데 중 한 친구는 아직도 그 마음이 생생하다. 그 친구는 J였다. J와 친구가 된지 1-2년쯤 지나 마음이 깊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내 마음을 감당할 수 없었다. 홀로 집안에 갇혀 울고, 웃고를 반복했다. 너무 보고 싶을 땐 그 친구와 만날 약속을 잡았다가도 혹시나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질까봐 이내 약속을 취소한 적도 있었다.


내가 고백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다양했지만 가장 강력했던 것이 있었다. '나와 사귀게 되면 분명 실망할거야.'

내 머릿속엔 이런 생각들이 확신에 가득차 스스로를 아프게 했다. 친구든, 관심있는 사람이든 그리 오래도록 이어진 관계가 없었다. 나는 오래 깊이 알게되면 다들 떠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착각일 수 있지만 그때는 그런 것 같았다. 누구에게도 내 모습을 숨기려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 바닥까지 보여준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싫어져서 떠나는 것보다, 관계가 소원해져서 떠나는 게 덜 아프겠다고 생각하고 멀리하려했다. 하지만 그것도 잘 되진 않았다. J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오래 만나지 않다가 한 번 만나게 되면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함께 있고 싶다는 욕망이 강해지고 손을 잡거나 자꾸 만지고 싶어졌다. 나는 그런 감정을 자꾸 억눌렀다. 그런 감정을 갖는 스스로를 책망하면서도 그렇게 책망하는 스스로가 불쌍해 울기도 했다.


분명한건 J는 내게 특별한 감정이 있어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연애 감정 없이 나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J는 나를 격려한답시고 덥석 손을 잡는 일이 잦았다. 심장이 쿵쿵 내려앉을 때마다 거리를 둬야한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마음을 밀어내었다. 그러던 어느날 J의 친구인 K를 만나게 되었다.


수줍음이 많고, 나보다 훨씬 큰 키를 가진 K는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매력은 모태솔로라는 점이었다. 나는 K정도면 나를 가지고 놀만 한 노련함을 가지고 있지 않을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그렇게 빨리 마음을 주지 않지만 K에게는 좀 달랐다. '이 사람을 좋아하면 되겠다.' 고 생각했다. 한동안 K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K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해졌다. 나는 그런 상태를 유지했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어느새 정말 K가 좋아졌다. 설레는 감정이 올라오기도 했고, 웃는 모습과 웃음소리, 걸음걸이도 좋아보였다. 나는 이것이 좋아하는 거라고 확신했지만 가슴 한 켠에서 걸리적거리는 다른마음이 신경쓰였다. 그 마음이 신경쓰일 때마다 K에게 연락했다. 할 말이 딱히 있진 않았지만 괜히 문자 한통씩 보내고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분명히 알고 있는게 있었다. K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K에게 거절당하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정말 좋아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감정이 어디서 어디까지가 진짜였는지 알 수 없다. 가벼운 관계를 맺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급하게 좋아할 수 있었으며, 거절당한 것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게 이상했다. 그리고 좀 더 스스로에게 솔직해져보기로 했다. 나는 왜 K를 좋아한 것이며, 어떻게 그토록 급하고 저돌적이며 무모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생각보다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J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였다. 나는 정도가 중요한 사람이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좀 더 긴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결혼 한 J가 내가 좋아서 나에게 오려고 한다면 행복할 것 같다고 상상한 일이 많았다. 실제로 J가 그런다면 만류하거나 피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감정이라는 것은 이토록 복잡하고 깊어서 잘 들여다보지 않으면 느낄 줄도 모른다. 감정에 좋은 것, 나쁜 것이 구분될 수 있다면 그때 내가 느낀 K에 대한 감정은 나빴을까. 그때 내가 J에게 느낀 감정은 좋은 것이었을까. 감정이라는 것은 내가 간절히 원하는대로 흘러가기도 하는 것일까. 만드는 것은 쉬운데 지우는 것은 어려운 것일 뿐인가. 내가 나를 감각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 뜯고 파헤칠 수록 더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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