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랑와랑 제주도 생태치유캠프 후기
나는 작년부터 이름, 나이, 직업, 사는 곳 같은 정보 없이 사람과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정보들은 듣는 즉시 그것만으로 상대의 특성을 규정해버린다는 것을 느낀 후 부터다. 그렇게 관계를 시작하면 상대를 제대로 판단할 수 없게 되는 것 같다는 문제의식이 들었다. 그런데 이후에 한동안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 다가가지도 못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할 듯한데 질문을 못하니 진땀도 여러번 났다.
지금의 나는 그 방식이 조금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름, 직업, 나이, 학력, 사는 곳 등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을 목격하곤 한다. 그렇게 입력된 뒤에 들어오는 정보는 그 기본정보와 어울리는 형태로 흡수하게 된다는 것을 느낀다. 가령 '이 사람은 어느학교 나왔는데도 제법 똑똑하구나' 라는 식이다.
해와, 주희, 홍이, 재재, 준, 다정, 수정, 야메, 금주, 중원, 준준, 승아, 승후 그리고 은혜, 아아, 희희, 채원, 민아, 갱서, 정변지, 효크 제주도에서 만난 우리는 불리고 싶은 이름으로 서로를 불렀다. 불리고 싶은 데로 호명된다는 것은 기존의 나에게서 벗어나는 짜릿함을 가져다주었다. 모두가 나를 '해와'라고 부르는 이 공동체에서 나는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서로를 빨리 알기위해 질문세례를 퍼붓지 않았다. 배려없는 질문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다들 경험해 본 사람들 같았다. 우리는 서로가 표현하는 만큼의 모습이면 충분했던 것 같다. 결코 가볍지도 지나치게 무겁지도 않았다. 아니, 조금 무거워져도 그건 그런대로 좋았다.
'해와는 따뜻한 사람인 것 같아요.'
나는 그들이 말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조금 느리고, 차분하고, 편안하다고 했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내 모습이 편안히 있을 때 그대로 나온다는 것이 좋았다. 그들과 시간을 보내며 나는 내가 어떤 자세로 살면 가장 나 다운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어떤 사람인 것 같다, 어떤 느낌이 난다, 어떨 것 같다고 서로를 추측한다. 정보는 많이 없으니 오로지 그 사람에게서 느낀 것들 만으로 더듬더듬 윤곽을 잡는 것이다. 이게 참 낯설면서도 즐거웠다. 이게 상대에게 마음을 열어놓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너무 궁금하지만 곁에서 바라만보면서 갸우뚱거리는 거다. 먼저 속마음을 이야기해줄때까지 재촉하지 않는다. 마음을 여는 속도는 다들 다를테니까. 어쩌면 우리는 이 방법을 다시 깨닫기위해 만났는지도 모르겠다고, 원래 관계란 그렇게 맺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느끼는 이 친구들의 추측은 사회에서 느끼는 것처럼 불쾌하지도, 관계를 혼란스럽게 만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기도 하고, 전혀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 주기도 했다. 서로에 대한 깊은 관찰과 관심이, 상대를 지극히 배려하는 방식으로 발현되면 이토록 좋은 느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서로에게 마음을 놓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만날때부터 서로가 '치유가 필요한 상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포용하기위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던 걸까.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의 아픔을 그대로 믿고, 위로하기위해 손을 잡았으며 뜨겁게 포옹했던 것일까.
사회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좀 더 정확한 정보로 그 사람을 판단하길 바라고, 조금씩 그 사람의 행동이나 말을 의심해보는 습관이 생긴다. 사람에게 치이고, 상처받는 일이 종종 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좋은 사람인 것처럼 표현하는 사람을 그대로 믿어주지 않으며, 자기자랑을 하면 겸손하지 않다는 이유로 싫어하거나 무시하곤 했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말, 행동, 눈빛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걸 인정하는 것, 실수, 시행착오, 허점 등을 인정하고 기다려주는 것이 아닐까.
진짜 눈은 감고, 마음의 눈을 뜨는 시간. 소란스럽고 분주한 일상을 끄고, 잊고있던 자연스러움을 수면위로 끌어올리는 시간. 우리가 잃어버린 줄 알았던 감성을 되찾아 다시금 사람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 그런 시간을 갖게 된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제주에서 난 그런 시간을 보냈다. 나의 감정을 억누를 필요가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하고 싶지 않은 말을 줄이고 그만큼 좀 더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했던가. '병'은 그것들을 잊어버릴 때부터 생기는 것 같다.
나는 환자였고, 치유가 필요했다. 치유는 생각처럼 거창하지 않았다. 그저 마음을 놓는 것, 마음을 놓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상담부터 처방까지 단번에 받아온 기분이 들었다. 제주에서 내 가장 기본적인 상태를 되찾았다. 편안한 상태에서 만난 모두가 너무나 좋은 친구들이었다. 그들과 함께라면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언젠가 다시 만날 인연들을 그리워하며 이 후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