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랑와랑 제주도 생태치유캠프 후기
4월부터였다. 아니, 3월부터 나는 이미 지쳐있었다. 아니, 실은 1년 전부터 내내 지쳐있었다. 무엇인가 필요했다. 새로운 환경이나 사람, 아니면 전혀 경험해보지도 상상해보지도 못한 돌파구가 내겐 필요했다.
파리에 가겠노라고 몇년 째 호언장담을 하고 있지만 파리에 갈 돈은 커녕 빚만 차곡차곡 쌓였다. 이런 젠장할 나라를 떠나버리는 것도, 가벼이 생을 마감하는 것도 어느것도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내겐 하고싶은 일이 많았그든)
어쨌든 돈이 없는 현실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박근혜 전대통령을 끌어내리는데 목소리를 보태고 기쁨의 날을 만끽했지만, 현실은 완벽하게 이전과 같았다. 이제 대한민국도 변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하면서도 막막한 하루하루 앞에서 나는 나날이 무력해졌다.
일은 하나씩 해결되는 듯 했으나(박근혜구속, 세월호인양 등), 그만큼 많은 일들이 생겨났다.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대통령 후보와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현정부,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세월호와 같은 사고들(스텔라호 등), 그걸 지켜만보는 내가 여기에 존재했다. 육군이 행하고 있는 동성애자 색출과 여전히 변함없는 주변사람들의 인권감수성이 내 무력감을 나날이 키우고 있었다.
툭 건들이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고, 작은 일에 심각하게 분노하게 되는 내 상태를 진단하고나니 응급처치가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도대체 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돈도 없고, 빽(background, bag, back, 아! 에코백은 많다.)도 없는 나는 곰곰이, 아주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페이스북으로 신청해놓은 무료 제주도 캠프가 있었다. 그건 어떤 결과가 나왔나 싶어 메일을 뒤적였다. 바쁜와중에 와서 급히 답장하고 방치해뒀던, 캠프에서 온 메일이 있는 것 같았다. 메일을 다시 읽어보니 내가 보낸 답장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할 때 필요한 인적사항이었다. 이미 당첨이 된 것.
고민했다. 기간이 애매했다. 새로 오픈 할 가게는 아직 정돈이 덜 되었고, 내가 바빠서 엄마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더구나 아직 마무리 할 다른 일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고민했던 부분은
생태치유캠프라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심리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자리라는 것이다. 나는 나를 환자로 규정할 것인가 아닌가를 고민했다. 생각해보면 굉장히 졸렬한 고민이었다. 이미 스스로는 환자라 생각하면서 그 사실이 타인에게 밝혀질까봐 두려워 한 것이다.
어쩔까.
엄마에게 물었다.
가야지.
엄마가 말했다.
그래 무료인데 가야지.
마음을 다 잡았다.
무료로 제주도에 간다는 것은 그것만으로 짜릿했다. 초청받은 기분이랄까. 승리자같은 기분도 들었다. 나는 참 속물인것 같다는 생각을 곱씹으며 제주도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제주도에 사는 지인들을 만나고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다가 캠프로 입성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우리는 모르는 사람으로 만나서 모르는 사람으로 헤어졌다. 하지만 아주 따뜻하고, 안심할 수 있는 이별이었다.
(2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