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종교 '돈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돈'이 있다. 그 '돈'을 갖고 싶다.

by 해와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지. 이 빚을 어떻게 해야하지. 여전히 이따금씩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발을 동동구른다. 핸드폰 주소록을 뒤적이며 돈 쓸일이 별로 없을 것 같은 사람, 부탁하면 잘 들어줄 것 같은 사람들을 찾는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은 이럴때 참 와 닿는다. 어쩌면 내가 지인들과 만나게 된 이유는 '가난'의 매력에 끌려서 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부탁을 들어 줄 것 같은 막역한 지인들은 어쩜 그렇게 다들 가난한 사람들 뿐인지.


그럼 가난한 그들을 빼고 아주 가끔씩 만나거나 겨우 한번씩 연락하게 되는 먼 지인을 찾게된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전화해서 나의 요즘을 이야기 하는 상황을 상상해본다. 설득과정에서는 약간의 조미료가 필요하다. 한숨섞인 말투와 낮은 목소리같은 음울한 기운을 마구 발산해야 한다. 그런데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SNS로 보여왔던 내모습이다. SNS속 나는 퍽 즐거워보인다. 아주 오랜만에 겨우 마음 먹고 미용실에 다녀와서 변신한 사진과 오랜만에 근사하게 차려입고 놀러다녀온 사진들이 나의 SNS에 가득했다. 그것만 보면 나는 아주 잘 살고 있어야 했다.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는 어쨌든 가난을 증명해야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해서 진정성을 전달해야 했다. 나는 저렇게 환하고 즐거운 SNS를 가지고 어떻게 가난을 증명해내야 할까. 그래도 될까. 내가 돈을 빌리면 그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머리하고 옷사는 데 쓰려고 하는 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까.


가난해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과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생겨난다. 자기방어, 자기부정 등이 일상화 되어있다. 책임질 수 없는 소비를 하게 만드는 사회분위기와 노동임금과 물가의 불균형으로 인해 벌어도 벌어도 먹고사는 걱정을 안하고 살 수 없는 게 현실이 되었다. 이런 사회에서 가난해지기는 너무나 쉽고, 먹고 살만해지기는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다.


가난에서 벗어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있기는 하다. '포기'다. 이미 가난의 구덩이에 갇히게 되면 허우적대는 동안 하나씩 포기하게 된다. 나를 이롭게 하는 수많은 소비들을 줄이게 된다. 문화생활이나 여행, 휴가 등이다. 그런 것들은 소비에서도 큰 영역을 차지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어려워도 가장 일순위로 포기하게 된다.

그 다음은 음식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니까 음식의 질과 양을 동시에 줄이고 포만감만 획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치료를 포기한다. 예컨데 치아나 안구와 관련 된 질병은 목돈이 들고,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에 오히려 치료를 받으면 사치인 것처럼 생각하게된다. 약간의 정신질환 같은 것은 병원을 찾을 생각조차 않으며 만성염증 같은 질병은 병원대신 약국에서 처방받는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치료를 못받을 정도는 사회적으로 '가난'이라고 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너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이 일반적인 포기라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 관계다. 한국 사회에서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소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다 돈이다. 밥 한끼, 커피한잔이 전부 돈이 들기때문에 우리는 관계 맺기를 포기한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을 갖기위해 SNS를 놓지 않는다. 우리는 값싼 경로로 사람을 사귀고, 가벼운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포기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다. 이 사회의 레퍼토리를 이해하지 못했다거나, 이 레퍼토리를 감당해 낼 수 없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목숨을 포기하기로 한다. 삶이 힘들어 쉬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더 이상 포기할 것이 없어 재물처럼 스스로를 바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종교에서 그러는 것 처럼.


이 사회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만큼 개인을 몰아세우고 있다. 그렇게 등골 빼먹히는 개인들이 99%인데도 불구하고 그 99%의 개인은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지 않고 더 약한자들을 괴롭힌다. 자신의 등골을 빼먹는 사람들에게 배운 것이다. 이 사회는 자신을 신격화한 1%의 힘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들은 본인들의 연명을 위해 99%의 개인들의 희생을 당연시한다. 그리고 점점 개인의 희생이 당연하다고 여기도록 교묘하게 이 사회시스템을 운영한다. 그 어떤 종교들보다 더 무서운 것이 돈의 종교, 이른바 '돈교'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돈'이 있다. 그 '돈'을 갖고싶다. 돈을 갖기위해 무엇이든 하는 1%와 돈을 갖기위해 무엇이든 포기하는 99%가 공존하는 이 사회에 도대체 '사람'은 어디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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