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랫줄이 내 눈높이보다 조금 위에 있도록 장대를 걸었다.
빨래 바구니에서 뒤엉킨 수건을 한 장 들어 올리면 감자가 딸려 나오듯 다른 수건들도 줄줄이 딸려 나왔다.
수건의 가장자리를 잡고 힘주어 털어야 탈수되지 못한 물기를 허공으로 쫓아낼 수 있었다.
분무기에서 분사된 것 같은 잔 물기들은 내 눈앞에서 아른거리기도 했는데, 그럴 땐 저절로 한 쪽눈을 찡그리게 되었다.
빨랫줄에 수건을 걸기 위해 고개를 살짝 들면 뜨거운 햇살이 눈부셔 눈을 꼭 감고 손끝의 감각만으로 수건을 곱게 펴 널었다.
잘 마른 수건은 잘 마른 명태 같았다.
반을 접으면 톡 부러질 것처럼, 햇볕의 공격에 속수무책 당해 바짝 굳어 있었다.
가끔은 수건 속에 나뭇잎이 끼어 있을 때도 있었고, 또 가끔은 무당벌레나 개미가 붙어있을 때도 있었다.
어쩌면 수건은 밖에서 마르는 동안 바람을 타고 온 나뭇잎, 무당벌레, 개미와 신나게 놀았을 지도.
그래. 바람은 잘 쐤니.
나는 생각보다 빨리 옛날 사람이 되었다.
햇살 아래 빨래를 넣었던 그때를 '우리 때는-'이라고 말할 날이 머지않았음을 안다.
미세먼지. 환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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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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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할까, 말까.
하루 종일 빨래 생각을 했다.
지난 며칠 동안 날이 더워 빨래가 늘었고, 오늘 하지 않으면 비가 그칠 때까지 쌓이기만 할 텐데.
바닥에 로션을 흘려놓고 닦고 나오지 않은 느낌, 일어난 그대로 이불을 구겨뜨리고 나온 느낌.
빨래가 쌓여있다는 건 해야 할 것을 하고 나오지 않았을 때의 신경 쓰임과 맞먹었다.
비 소식이 있기 하루 전, 신나게 빨래를 했다.
비올 때 들으면 좋은 음악을 추천받아 스트리밍을 해 놓고 욕실과 세탁기를 왔다 갔다 했다.
손빨래 한 것들을 세탁기에 옮기는 동안 바닥에 물을 뚝뚝 떨어뜨려 몇 번 미끄러질 뻔하고,
그 물을 닦는다고 바닥을 발로 훔치는 동안 허리 구부리는 것도 귀찮아서 세상을 어떻게 사나 싶었다.
정성스레 한 빨래는 이틀 내내 마르지 않았다.
빨래 덜 마른 냄새와 섬유 유연제 냄새가 뒤섞여 내 방은 지금 엉망진창이다.
겨울을 지낼 때 보다 보일러의 온도를 높이고 나왔는데, 오늘은 빨래가 어지간히 말라있기를.
'바짝'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
장마철도 아닌데 웬 장맛비람.
아주, 아주, 아주 귀한 손님이 오려나 보다. 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