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는 손잡이를, 한 손에는 책을 들고 있었다.
지하철이 멈출 때마다 손잡이를 잡던 손으로 책장을 넘겼다.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줄은 마침표로 끝나기를 바랐다.
『놀림을 받았던 아이는 부러진 칼로 넝마가 된 몸뚱-』
강제로 끊어져 버린 단어들은 찝찝함을 만든다.
완전한 의미를 갖추기 위해 낱글자들 사이로 자기장이 흘러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을 텐데,
책장의 맨 끝을 마무리하고 책장의 맨 처음을 시작하는 단어의 분리는 가혹하다.
내 시선이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거리가 괜히 멀게 느껴지는 것도 같고.
앞에 앉아 계시던 아주머니가 일어나셨다.
곧 내리시는가 싶어 아주머니가 일어난 자리에 앉았는데,
다음 역에 도착해도 또 그다음 역에 도착해도 내리지 않으셨다.
가끔은 내 눈동자가 생각의 속도를 이겨먹으려고 해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올려 볼까, 말까를 고민하면서 이미 눈동자는 끊어진 단어를 연결하듯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번엔 내 시선이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거리가 가깝게 느껴졌다.
아주머니는 나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충분히 시선을 피할 수 있었지만, 서로 마주한 눈빛에서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끌어안고 싶은 눈빛이었다.
-책 읽길래, 편하게 읽으라고.
다른 사람들은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는데 책을 들고 있길래
책을 든 손은 언제나 무거워 보여서 양보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냥, 알 수 있었다.
단순히 핸드폰보다 책이 무거워서가 아니라
책이 가지고 있는 부담감을 의미한다는 것을.
아주머니 딸은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라고 하셨다.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꽤 오래 준비하셨던 모양이라고.
작게 내쉬는 한숨이 무거웠고, '시험 준비'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고단했으니까.
지하철에서 책을 보는 사람을 봐도 내 딸을 떠올리고,
길거리에서 삼각 김밥을 먹는 사람을 봐도 내 딸을 떠올리고.
세상 곳곳에서 딸의 막연함을 투영시키고 있는 아주머니의 마음이
책의 무게보다 더 무거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양보 받아야 할 자리가 아님을 알아서 엉덩이가 따끔따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