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투정 부리고 싶은 어떤 날

by 해와


샌들 버클이 풀리지 않아서 오래도록 허리를 숙여 끙끙대다가,

결국 샌들을 벗지 못하고 문 앞에 깔아놓은 발깔개에 주저앉았다.

주먹을 쥐고 허벅지를 몇 번 두드리다가, 종아리도 몇 번 주무르다가.

무릎을 세워 그 위에 팔을 괴고는 턱을 받치고 있다가… 한숨이 나왔다.



'크게 숨 쉬어보세요.'

의사 선생님이 내 몸에 청진기를 댄 것도 아닌데

진찰받을 때나 쉴 법한 아주 큰 들숨에 깜짝 놀란 것도 잠시,

날숨만 쏟아진 것이 아니라 눈물도 같이 쏟아져서 더 놀라 버렸다.



신발 벗는 것도 내 마음대로 안 되고.

내 마음대로 안 되고.

안 되고.



엄마 말이, 우리 삼남매는 자랄 때 투정을 부린 적이 없다고 했다.

떼쓰지 않아서 수월하게는 키웠다만, 떼쓰지 않아서 가끔은 속상했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투정에 늦바람이 불었는지 현관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징징대고 있었다.



손등으로 얼굴을 훔치는 것이 따가워졌을 때쯤,

아픈 것은 또 싫었는지 가방 속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달아올랐을 눈가를 꾹꾹 누르고, 까슬해졌을 볼도 꾹꾹 누르고.

그러는 사이 어디에선가 좋은 향이 난다 했더니 손수건에서 났구나.

며칠 전 섬유 유연제를 바꿨는데, 이렇게 코를 묻고 있으니 또 다른 향이 난다.



발만 현관에 둔 채로 손수건에 코를 묻고 모로 누웠다.

눈을 감고 몇 번의 호흡을 하는 동안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그 누추한 곳에서 세상 불편한 자세로 박자에 맞춰 발을 까닥이다가,

다음 곡을 꼭 듣고 싶은데 핸드폰 배터리가 나갈 것 같아서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아, 뭐야- 왜 이렇게 쉽게 풀리는 거야.

손가락에 힘도 주지 않았는데 샌들 버클이 풀어져 버렸다.



.

.

.



어떤 날이었을 거다.

상처받지 않아도, 힘들지 않아도 이유 없이 투정 부리고 싶은 어떤 날.



KakaoTalk_20201203_180340651.jpg 그림, 내친구 오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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