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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혜원 Mar 17. 2018

눈덩이가 우리 마을을 지나간대요

<중국일람> 독후감

눈덩이가 우리 마을을 지나간대요

더이상 앞으로 중국이 우리 삶에 더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아니다의 담론은 의미 없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굴기 혹은 중국 경제 경착륙론을 설파하는 이웃나라 번역서들을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눈덩이가 산꼭대기부터 쾅쾅 거리면서 굴러 오는 상황에서 저게 이쪽을 지나갈 것이다 저쪽을 지나갈 것이다의 갑론을박하는 게 우선순위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 마을을 지나가든 안가든 가장 급한 건, 현실적인 대비를 하는 것. 그리고 강 건너 이웃마을은 몰라도 적어도 우리 마을은 저 눈덩이 길목에 있는 게 확실하거든. 그래서 직접 현장에서 뛰면서 느낀 안타까움으로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정부, 대기업, 그리고 중국 14억 인구에 이쑤시개 하나만 팔아도 이익이라는 헛소리를 하고 있는 한국사람들을 꼬집는 게 내심 시원했다.


언제까지 이거 따지고만 있을래...

예를 들면 중국의 GDP 성장률을 연도별로 나열하며 곧 해가 질 것이다 탁상공론하는 것보다, 차라리 현실적으로 '우리도 돈 좀 주고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글이 더 영양가 있다고 생각한다. 능력 좋고 훌륭한 인재는 언제든 국적 상관없이 가장 훌륭한 기업에서 모셔가야 한다. 들려오는 많은 한국기업들처럼 별다른 인센티브 제도 없이 인재를 굴리는 기업이 인재유출을 겪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책에 나온 비행기 조종사뿐만 아니라, 요즘 게임 개발자와 의사에게 한국 연봉의 9배를 보장해주고 모셔 간다는데, 그걸 따라가는 그들에게 누가 감히 삿대질할 수 있겠는가. 국가의 경계는 앞으로 더욱 사라지고 경쟁력 있는 플랫폼과 시장만 유의미하게 남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인지 지금 같은 글로벌 무한 경쟁의 시대에 중국 기업, 한국 기업, 미국 기업을 나누어서 인재의 유출을 질책하는 여러 책들이나, 한국 언론을 바라보며 답답했다. 자금의 절대량이 비교가 안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중국에 비해 경쟁력 있는 인센티브 제도를 구축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문제해결의 핵심 아닌가.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통쾌한 지점들이 많았다.

답지가 뜯긴 해설지를 찾아 뒤척이다

사실 전반적으로 글은 거칠게 다가왔다. 첫째, 구성 면에서 각 장의 주제를 갈래로 완성도 있게 펼쳐지는 글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블로그를 모아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구성을 좀더 다듬었다면 필요한 상황에 뽑아보는 일종의 ‘지침서’로서, 책 이름에 걸맞는 역할을 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둘째, 구체적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글을 읽으면서 불편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일반화할 수 없는 것에 대해 그렇다고 말하는 것을 굉장히 불편해하고, 이렇다할 대안이 없는 비판을 싫어하는 쓸데없는 강박증 때문일 것이다. 구체적인 대안이나 구현방안을 정리해주지 않고 열린 결말로 끝나는 장들을 마주할 때마다, 어떻게 보면 그 질문의 답은 직접 사업을 하고 있는 기업인들이나 우리가 채워 나가야 하는 것인데 어렵고 답답한 마음에 문제집 뒤에 달려있지도 않은 해설지를 찾아 뒤적이는 찜찜함이 들었다. 중국인과 다른 비즈니스적 시간 개념을 어떻게 맞춰나갈 것인가. 디테일이 중요한 건 아는데 어떻게 맞춰나갈 것인가. 자금 절대량이 비교가 안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경쟁력이 있는 인센티브 제도를 어떻게 구현해나갈 것인가. 다 우리가 적어나가야 할 흰 답지라서 막막하다.

뭐라고 쓰지...

중국을 정의 하는 방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도들이 계속 나오는 것은 단연코 매우 반가운 일이다. 어릴 때부터 서점에 가면 중국 관련 코너를 쉬이 지나치는 법이 없었는데, 항상 실무라는 엑기스가 쏙 빠진, 학문적 해석으로 가득한 두꺼운 벽돌같은 책들만 많았었다. 하지만 이제 상무영사, 기자, 기업가 그리고 학생들도 각자 느낀 중국이라는 큰 세계를 담담하게 풀어낼 수 있는 시도들이 계속 나오고, 브런치나 네이버 차이나랩 같은 좋은 플랫폼들이 생겨나서 고무적이다. 더군다나 외교관이라니! 한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의 지위 자체가 사람들로 이 책을 집어들게 하는 마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 사람은 내가 겪어보지 않은 그 위치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고, 어떤 케이스들을 보았는지 궁금하다. 결국 중국도 제일, 제이, 제삼으로 일언지하에 정리되는 이론이 아닌, 한명 한명이 기워서 만든 지구본이라 생각한다. 무지의 세계에서는 오늘 너와 내가 본 기억이 합쳐져서 새로운 정의가 탄생하니까.


사실 중국을 정의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타자’로서의 접근방식일 수 있다. 과연 미국, 일본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그 미지의 세계를 모르니까 나름대로 틀에 맞춰보려고 하고, 설명해보려 하고 하는 것이지만 솔직히 어떤 외국인이 ‘한국’을 정의한다고 하면 웃기지 않는가. 그래서 밀도 있게 중국을 체험하신 저자가 타자로서 나름대로 어떤 정의를 갖고 계실지, 그 생각의 단편들이 기대된다. 아니면 제발 중국 좀 정의하려 하지 말라고 하실 수도 있겠다. 그가 생각하는 중국이라는 틀, 접근방식, 생각의 단위가 궁금하다.


'불안한 우리네 삶'이기에 해야 할 것

생각해보니 요새 미래에 관한 책을 많이 읽는다. 당장 오년, 아니 일년 앞을 모르는 불안한 우리네 삶이라, 오늘 내일의 1도 방향이라도 제대로 짚고 싶은 마음에 중국, 미래, 기술이 나의 큰 키워드가 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적어도 중국이라는 눈덩이는 계속 주시하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확실히 우리 마을로 지나간다니까!


상하이 주재 상무영사 정경록 님이 쓴 <중국일람> -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1957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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