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혜원 Jun 14. 2020

행복할 것 같은 순간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떠올려 보시오

나를 움직이는 동인을 찾는 방법

행복한 순간을, 혹은 경험하고 싶은 행복할 것 같은 순간을 아주 구체적인 이미지로 떠올려보라

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때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나라인 스페인에서 내가 가장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이국적인 마을의 아침이었다. 뜬금 없었지만, 행복을 위해 산다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사는 내가 이런 꽤 구체적인 상상을 해보지 않았다는 것에 한편 놀라며 골똘히 생각하게 되었다. 잠시의 생각 후에, 내가 떠올린 순간은 다음과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내가 좋아하는 일밤새 하고 나서

아침에

그런 외국의 냄새가 물씬 나는 거리에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사이에 앉아 산미가 나는 거대한 커피와 샐러드를 시켜고 나서 홀짝 홀짝대면서, 

와, 엄청난 밤이었다, 우리 이거 먹고 한 네다섯시간 이따가 다시 모여서 아까 그거 같이 디벨롭해보자, 잠은 언제 자? 몰라, 허허허허 웃고

정신도 없는 와중에 앞에 있는 사람들을 놀리는 나의 모습이었다.  


이게 행복한 순간이라고?

남들이 듣기에는 정말 기괴한 이 행복의 순간을 내가 무의식적으로 바라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이 대답을 마주하기 싫어 끝까지 피해왔었지만, 이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순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직감했었으리라. 

외국, 커피와 같은 꽤 보편적인 키워드도 있지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밤새' 같이 일할 수 있는, 적어도 우리가 보기에는 '위대하고 가치 있는 어떤 일', 그리고 밤을 새고서고 허허허허 웃음이 나올 수 있는 '훌륭한 동료들과의 케미'. 보통의 직장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이상한 행복의 조건이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나는 나의 일을 일구겠구나 직감하고 말았다. 


그래서 참 좋은 아침이었고 좋은 사람과 함께였지만 다가올 것들이 두려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은,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아침으로 남았다. 그리고... 지금의 직장인, 당시는 더 작았던 스타트업으로 옮겨야겠다는 결심에 어렵게,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예상 밖으로 잔인한 질문이 되었었더랬지. 허허.


스페인 세비야 길거리에서의 아침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바삐 움직이게 하나요?


그 뒤로 사람들이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에 대해 물을 때, 이 행복의 구체적인 이미지를 많이 인용하곤 한다.  

남들이 생각했을 때 평범하지 않은 행복의 이미지라고 해도, 이게 정말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고, 이게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잘 설명할 수 있는, 구태여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작년 베이징 출장을 갔다가 구체적인 이미지에 맞닥뜨려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어 어머 이건 찍어야 해!하고 찍어 놓았다.

중요한 미팅 전 베이징의 전투 현장....

전투가 벌어진 현장의 노트북들과,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스크립트와 새벽에 배달이 온 스타벅스 커피들.  

죽을 것 같이 힘들면서도 ‘위대한 사람들’과 ‘위대한 일’을 같이 만들어나가는 것만큼 나를 가슴 뛰게 만드는 것은 잘 없던 것이다.

새벽 2시? 3시?경이었던 것으로 기억. 다들 제정신 아님.

최근에도 비슷한 기괴한 광경?이 있어 놓치지 않고 찍어 놨다.

이틀내내 아이디어 내고, 토론하고, 소리 지르고, 화이트보드에 적고, 정신 나가서 농담하고, 밥 먹고 또 다시 돌아와서 또 토론하고.

힘들었지만, 뿌듯했다.

최근 이틀내내 진행됐던 릴레이 토론의 현장.... 더러우면 더러울 수록 행복한 건가? ㅎ

이때 ‘위대한 일’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사실 '위대함'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다. 

아주 거대하게는 인류를 구원하고 인류의 삶의 질 전반을 향상시키는 심오한 일도 있겠지만, 아주 끝단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예상치 못한 행복감을 느껴 삶을 영위해나갈 영감과 자양분을 얻는 것도 위대함에 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 정도의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도 양(+)의 측면에 있는 일일 수 있겠다.

즉,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는 단적인 플러스 영역에 속하는 일도 있지만, ‘저게 그렇게 위대해?’하고 갸우뚱 거릴 수 있는 애매한 grey area에 있는 일들도 분명이 있다. 나의 전략은 그 grey area에 있는 것들도 적어도 양수(+)의 영역에 있는 것이면 삶에서 더 많이 이뤄지도록 노력하는 것.  그게 삶의 태도이든, 내가 만드는 서비스를 통해서이든.


나를 움직이는 것을 찾을 수 있는 방법

가끔 삶에서 지쳐서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러고 있지? 나는 왜 일하지? 나는 왜 살지? 와 같은 현타가 들 때면, "당신이 가장 행복할 것 같은 순간을 아주 구체적인 이미지로 떠올려 보시오"라는 질문에 대답해보길 바란다. 

당장 튀어 나오지 않아도 된다. 시간을 여유롭게 가지고, 찬찬히 답해나가길 바란다. 오히려 그게 더 솔직한 내면의 답을 부르는 key일 수 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고, 다 행복하자고 하는 일인데,

우리는 생각보다 본질에 대한 깨달음 없이 달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마주치기 싫은 이 질문을 마주해봅시다.


나는 어떨 때 행복한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작가의 이전글 2019년 당신의 사자성어는 무엇인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