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Let My People Go Surfing: The Education of a Reluctant Businessman)>
요새 패션피플들이 즐겨입는 아웃도어 브랜드이자, '이 자켓을 사지 마세요' 환경 마케팅 캠페인으로 유명해진, 최근에는 환경을 파괴하는 트럼프에게 고소장을 던지는 활동으로 유명해진 Patagonia 창업자 이본 쉬나드의 창업 스토리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이 기업을 몇십년동안 운영해왔고, 앞으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경영할 건지 출사표를 내는, 표지만큼이나 잔잔한 책이다.
파타고니아의 친환경 지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마케팅 캠페인
단순히 '환경을 우리는 이렇게 사랑해요' 같은 나이브한 울림이 아니라, '나는 이래서 사업을 시작했고, 그것 때문에 느릿느릿 성장하지만, 앞으로도 그것 때문에 사업을 할 거에요'라는 낮은 목소리의 느릿느릿한, 그러나 올곧은 어른의 고백이 들리는 것 같은, 따뜻한 오디오북 같은 책이다. 원서 제목부터가 the education of a 'reluctant businessman'. 아, 솔직해서 멋있다.
젊은 시절의 이본 쉬나드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대장장이의 삶을 살았고, 클라이밍을 좋아하던 그는 바위에 변형을 주지 않고 등반할 수 있는 '유기농 등반'을 위한 초크를 발명하면서 쉬나드 이큅먼트를 창업한다. 사실 창업한 이유는 이윤이 아닌,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함이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성장하는 기업이 저지르는 전형적인 실수를 모두 저질렀다고 고백하는 그의 진솔함에서, 환경을 위한 기부를 하기 위해 사업을 한다고 고백하자 '그것은 다 헛소리. 회사를 1억 달러쯤에 팔고, 나머지로 재단을 만들어서 원금 투자로 더 큰 기부를 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전문경영인의 대답을 듣고 충격을 받아, '나는 정말 사업을 왜 시작했을까' 고민하는 한 어른의 모습에서 정말 진솔한 어느 인간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정말 힘들게, 힘들게, 사업을 시작하고 35년만에 그가 깨달은 것은, 그가 아주 어릴 때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큰 회사가 되는 것이 아니었으며, 최고의 대기업보다는 최고의 작은 회사가 되기 위해, 이런 '실험'의 한계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책임감 있는 시민으로서 살기 위함이었다는 것이었다. 빠른 성장과 상장, 그리고 양적확대만을 외치고 있는 미친 자본주의의 소용돌이 안에서, 정말 더디게 지금까지 필요한 만큼만 기업을 성장시킨, 한명의 '배우고 싶은 어른'의 철학이 올곧이 느껴지는 책이다.
Yvon Chouinard, Patagonia
이 책의 초판을 쓰는 데 15년이 걸렸다고 한다. 전형적인 기업의 규칙에 따르지 않고도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것, 다순히 좋은 성과가 아니라 훨씬 더 압도적인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을 100년 후에도 존재하고 싶은 기업들에게 확실하게 증명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란다. 우리 창업가들이 얼마나 이 원칙 앞에 당당할 수 있을까. 성장과 안정성 사이에서 얼마나 책임감 있게 몇십년동안 원칙에 집중할 수 있을까.
또 그는 수년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제품, 시장, 소재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제품 팀에 던져주고, 다시 산으로 떠난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처럼, 파타고니아의 문화는 "Let my people go surfing"로 대표된다. 창업자가 대장간을 경영하던 시절부터 2미터짜리 파도가 올 때면 작업장의 문을 닫고 파도를 타러 갔다. 좋은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면 언제든 바로 나설 수 있는 근무환경을 만들고, 직원들은 오후에 맘껏 암벽을 타고, 학업을 계속하고,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한다. 알아서 놀고, 알아서 일하고, 알아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믿음이 있는 문화, 그리고 애초에 그렇게 일할 수 있는 직원들을 뽑는 문화. 그리고 이본 쉬나드 아저씨는 아직도 흰머리를 휘날리면서 서핑을 한다.
멋있는 할아버지
좋은 조직과 철학에 대해 머리를 싸매고 있는 요즘이었는데,
한 '배우고 싶은 어른'이 나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셨다.
다 읽고 나서는 내내 여운이 쉬이 가시질 않았다. 그리고 장마가 시작되기 전, 이상하게도 계속 날씨가 좋았다. 10명이 훌쩍 넘는 우리 팀 전체에게 오후 반차를 내고 놀러가자고 했다. 한강에 가서 돗자리 깔아놓고, 으샤으샤 함께 열심히 달려온 팀원들과 자지러지게 웃고, 춤추고, 도란도란 야경 보면서 하던 이야기를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제는 집에 가려고 돗자리를 걷어내고 있는데 후둑 후둑 조용히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는데,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