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 pumped 독후감
처음에는 제목이 너무 구리다고 생각했다.
'슈퍼 펌프드라니, 세상에.'
교보문고를 지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독자들 중 몇 퍼센트가 이 제목을 보고 무슨 뜻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까. 출판사는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제목을 번역한 거야.
Super Pumped : 매우 신이 난, 열성적인, 열광적인.
하지만 520쪽에 달하는 대서사를 반나절반에 매료되어 읽고 내려놓으면서 느낀 것은, 우버의 약 10년간의 미친 대서사시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Super pumped'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번역가도, 출판사도 이런 선택을 하였으리라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트업 역사상 가장 높은 기업가치의 유니콘을 만들었었던 우버 창업자 트래버스 캘러닉.
그를 있게 만들었던 것도, 그를 '한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창업가의 반열에 올렸던 것도, 그리고 그를 곤두박질 치게 만들었던 것도 'Super pumped' 정신이었다.
우버에서 받아들여지는 가장 큰 정신은 '전투적인', '들이대는', '호전적인', '공격적인', '성장하는'이었다. 법망을 피해가기 위해 경찰에게 뇌물을 건네거나, 경쟁사의 데이터베이스를 긁어오거나, 교묘하게 앱스토어를 우회하기 위해 고객들의 정보를 긁어오는 것은 모두, 우버를 성장하게 한다면 암묵적으로 허용되었다. 그리고 심지어 부하 여직원에게 잠자리를 요구하는 행위조차, 그가 우버를 위해 큰 성과를 내고 있으면 몇번의 신고에도 불구하고 이렇다할 징계 없이 회사에서 '번성'할 수 있게 해줬다.
캘러닉에게 인사팀은 그저 성가신 존재일 뿐이었다. 조직운영과 직원들의 성장과 유지를 돕기 위한 중요한 팀이기보다는, 더 빨리 성장하기 위해 자기가 준 카드를 끼고 미친듯한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줄 젊고, 패기가 넘치는, 잔말 없이 야망에 활활 불타 'Super pumped'된 남성들을 빨리 꽂기 위한 기능적인 조직일 뿐이었다. 캘러닉은 더더욱 주변에 자신의 '개인적인 치어리더'들을 두기를 원했으며, 내부의 쓴소리를 대변하는 사람들은 서서히 말라죽였다. 중요한 전략회의에서 서서히 그들의 참여권한을 빼앗아갔으며, 뒷조사를 통해 그들의 입지를 약화시켰다. 더 많이, 더 빨리 사람들을 뽑는 데에만 집중하던 우버는 결국 2017년부터 시작된 엄청난 스캔들에서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했다. 아니, 적어도 캘러닉은 실패했다.
이 책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창업자의 지향점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너무나도 패기 넘치고 위대한 야망을 가졌고, 실제로 신화를 이뤄냈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미성숙했고, 자신만만했으며, 반성할 줄 몰랐다. 다 닥치고 Super pumped, BAAM! 성장해, 성장해, 성장해. 성희롱? 뇌물? 해킹? 우회? 해. 닥치고 들이대. 이게 위대한 기회가 최악의 위기로 돌변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우버 같은 회사에 다닐 수 있나요?"라고 묻는 옛 동료들에게 부끄러움을 넘어 수치심을 느끼는 우버 직원들의 한숨. 이것만큼 저릿해서 넘기기 어려운 페이지가 없었다.
결국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다. 페이스북 캠퍼스는 사라진 IT 대기업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소유였다. 저커버그가 선의 로고를 모두 떼어내는 대신, 몇개는 그대로 두독록 한 것은 memento mori, 페이스북 또한 멸종되어 로고만 남겨질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리라. 사실 캘러닉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그는 인간성을 떠나 어떤 면에서는 역사에 남을 만한 '일을 낸' 사람이었으며, 단 몇년만에 그 정도의 스케일업을 한 기업을 만들어낸 사람도 역사상 손에 꼽을 수 있는 건 사실이다. 탄탄한 내공을 가지고 성장의 곡선을 잘 탔으면 좋으련만, 사실 성장 속도가 너무 빠르기도 했다. 그렇다고 세간의 손가락질을 피해갈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았으면 좋겠다. Super pumped가 몇년만에 피슈슉하고 바람 빠진 풍선이 되지 않기 위해 어떤 포인트를 경계해야 하는가. 그것이 이 업계에 던지는 경종이다.
초기에 어떻게 각 도시들을 뚫어냈는지의 스킬들, 어떤 해키한 방식으로 당국의 눈을 벗어났었는지, 캘러닉을 내쫓기 위한 이사회의 긴박한 암투, 이름만 들어도 알 실리콘밸리 거물들의 민낯 등 너무 흥미진진하고 날것의 이야기들이 덕지덕지 발라있는 맛있는 초콜릿 세트 같은 책이다. 너무 맛있게 먹다가 메시지가 너무 써서 다크초콜릿 같은 맛도 나지만, 우선 당장 집어 드시길.
정말 유명한 회사들의 민낯을 재미있게 읽어내려갈 수 있는 추천할만한 책은 아래와 같다.
<카오스 멍키> - 페이스북 / 실리콘밸리의 실상을 알고 싶으면 꼭 읽어야할 고발서 (클릭)
<배드블러드> - 테라노스
<천재들의 대참사> - 허브스팟
이 책들의 공통점은 "그는 어릴 때부터 명민했다."로 시작하는 뻔하디 뻔한, 창업자와 이야기를 한번이라도 안 나눠봤을 것 같은 기자가 쓴, 끼워넣기식의 창업 스토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위대한 리더들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들의 찌질한 면을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의 아주 자세한 회상기이거나, 아님 정말 부끄러울 정도로 끈질기게 수사하여 만들어낸 르포와 같은 책들이 실제로 큰 짜릿함과 오래 남는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