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의 목소리로
'CEO'이기 이전에, '배우고 싶은 어른'의 기록
모든 것을 예측하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돌아다닐 것만 같았던 2020년에 무슨 전염병이 돌아서 이렇게 세상이 한순간에 바뀔 줄, 밖에도 못 나가고 칩거하게 되는 기이한 전세계의 풍경을 누가 예측했겠는가.
미래를 예측하는 것보다는 대응하는 것이 우위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어, 올해는 점점 불가항력적인 상황 앞에서도 위대한 기업을 만들었던 창업가들의 이야기들을 많이 찾아보게 되었다.
그들도 처음에는 이렇게 미약했을까.
그들도 이렇게 헤맸을까.
그들은 이런 문제 앞에서 어떻게 대응했을까.
창업자들의 이야기를 하는 책들은 워낙 많지만, 대부분이 기자들이 그들을 직접 취재하면서 인터뷰한 내용이거나 이미 나온 뉴스들을 짜깁기 한 책들이 많아 그 생동감이나 그들이 어떤 시점에 느꼈던 감정과 깊은 생각을 온전히 담아낸 깊이를 느끼기에는 쉽지 않아 아쉽다. 그래서 오늘은 창업가들이, 그들의 목소리로, 그들의 솔직한 경험을 풀어낸 자서전과 비슷한 컨텐츠를 위주로 이야기해보려 한다.
올해 따라가보았던 경영가들이 직접 쓴 책들은 다음과 같다.
Netflix / Marc Randolph /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 (That will never work)
Netflix / Reed Hastings / 규칙 없음 (No rules rules)
Disney / Robert Iger / 디즈니만이 하는 것 (The Ride of a lifetime)
Square / Steve Miller / 언카피어블(Uncopiable)
Patagonia / Yvon Chouinard /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Let my people go surfing)
Linkedin / Reid Hoffman / 블리츠스케일링(Blitzscaling)
Bridgewater / Ray Dalio / 원칙(Principles)
Andreessen Horowitz / Ben Horowitz / 하드씽(The hard thing about hard things)
오늘은 Marc Randolph의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 Disney CEO Bob Iger의 <디즈니만이 하는 것>, Patagonia Yvon Chouinard의 <파도가 칠 땐 서핑을>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유일하게 Robert Iger만이 창업자가 아닌, 전문경영자의 입장으로 쓴 책이지만, 그만큼 Disney의 글로벌 확장시기에 큰 역할을 했던 CEO였고 큰 의사결정 과정에서 어떤 생각과 감정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의 솔직한 면모가 잘 담겨 있기 때문에 선정하였다.
넷플릭스 공동 창업자이자 CEO였고, 2003년 상장 후 회사를 떠나 실리콘밸리의 전설로 남아 있는 마크 랜돌프가 최초로 공개하는 '아주 자세한', 2002년 상장 직후까지만 다루는 넷플릭스 초기 이야기이다. '신화'가 아닌, 담담한 회고글이어서 좋다. 아발론을 타고 매일 아침 리드 헤이스팅스(현 넷플릭스 CEO)와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하며 토론했던 출근길, 몇백개의 아이디어 중에 나왔던, 아내조차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라고 말했던 DVD 온라인 주문 비즈니스 모델.
어떻게 빠른 린 테스트를 했는지, 초기 팀을 누구로 어떻게 꾸렸는지, 200만 달러 시드 투자를 어떻게 받았는지, 넷플릭스 출시 후 잘못 보낸 음란 DVD 등 시시콜콜한 문제해결을 어떻게 해왔는지, 제프 베조스를 직접 만나 아마존의 인수 제안을 어떻게 거절했는지, 개인의 성장속도보다 회사의 성장속도가 더 빨라 '너가 CEO하면 어려워'라는 말을 듣고 회사를 넘겨준 그날 저녁 황혼의 이야기, 고객이 늘수록 돈이 빠져나가는 역설을 어떻게 반전시켰는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를 먹은 넷플릭스의 월 구독 서비스가 어떤 세가지 아이디어를 짬뽕한 아이디어인지 등등.. 지금까지도 이어내려져 오고 있는 신화와 에피소드들을 이렇게 생생한 경영자의 말로 읽을 수 있다니, 읽는 내내 감탄하며, 밑줄 치고, 메모를 적으며 좋아했더랬다.
경영자임을 떠나, 자신이 일군 사업체를 바라보는 관점, 사랑스러운 가정을 생각하는 관점,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를 온전히 문제로서 접근하며 풀어내는 관점을 보며 그는 성숙한 어른, 배우고 싶은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제 이 단계부터는 당신이 일군 사업체의 경영자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자기 손으로 데리고 온 사람에게 들으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그는 이 부분을 회상할 때 처참한 심정을 숨기지 않았고, 회사의 성장속도보다 자신의 성장속도의 기울기가 가파르지 않다는 것을 깔끔하게 인정하고 CEO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렇게 유명한 '거침없는 솔직한 피드백, 그리고 자유와 책임이 주어지는 넷플릭스의 문화'가 그와, 그가 신뢰하는 리드 등의 다른 경영자들과 직원들에게서 어떻게 나온 것인지 더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 책 정보 >> 클릭
원서 제목 번역이 정말 아쉬운 책이다.
그냥 딱 한국어로만 보면, 여느 책처럼 디즈니의 경영 전략을 수박 겉핥기한 책이 아닌가 떠오르게 하는 한국어 제목이지만, 이 책은 정말 말그대로 <The ride of a lifetime>, 굴곡이 많은 롤러코스터와 같은 인생의 리듬을 이렇게 타왔다는, 아주 up&down이 많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가득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밥 아이거는 창업된지 90년이 지난 어쩌면 이미 제국을 이루어 놓은 디즈니에서 15년간을 CEO로서 일하며, 더 넓고 견고한 디즈니 제국을 일구어낸 사람이다. 1974년 ABC TV 스튜디오에서 말단의 제작보조로 입사하여, 승진을 거듭해 ABC 사장으로 취임하였고, 1996년 ABC가 디즈니에 인수합병된 후 한단계씩 올라가 1999년 월트디즈니인터내셔널 회장직까지 수행했다. 2005년부터 2020년 연초까지 15년간 CEO로 역임했다.
많은 책들이 직원이 3명이었던 시기부터, 문제들을 주먹구구로 해결이라기보다는 돌파해나가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엮었다면, 이 책은 말단 직원에서부터 거대한 제국의 CEO까지 올라간 사람의 솔직한 고민과 지혜가 담겨 있다. 보스에게 배운 걸로 최악의 조건에서 최고의 시청률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디즈니 CEO로서 임용되기 위한 수많은 모욕적인 인터뷰들에서 어떻게 압박감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켰는지,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하게 되면서 그 깐깐한 스티브 잡스의 마음을 어떻게 얻었는지, 너무나도 다른 성격의 조직들을 합치면서 나오는 불협화음을 어떻게 조화롭게 만들었는지, 원래는 디즈니월드를 타깃으로 삼았던 50명이 넘게 사망한 충격적인 총기 테러 소식을 듣고 어떻게 대응했는지.. 정말 다양한 층위의 에피소드들이 이 사람의 목소리로 직접 담담히 들려 온다.
사실 이 책의 핵심주제는 리더십이다.
끈기, 인내심,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분노와 불안을 피해는 방법,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방법에 대해 아무리 많은 불렛 포인트로 이야기를 한들, 엄청난 스케일의 고난을 밑바닥부터 밟고 올라가면서 온몸으로 느껴낸 사람의 목소리만큼 강렬하고 효과적으로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은 없으리라.
두려움을 두렵다고 하고, 밤잠을 설쳤다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사람.
본인에게 막강한 힘이 있고 중요한 사람이라고 온 세상이 부추기더라도 본질적 자아에 대한 인식을 스스로 놓치지 않고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이 리더의 모습에서 배우고 싶은 어른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디즈니만이 하는 것> 책 정보 >> 클릭
요새 패션피플들이 즐겨입는 아웃도어 브랜드이자, '이 자켓을 사지 마세요' 환경 마케팅 캠페인으로 유명해진, 최근에는 환경을 파괴하는 트럼프에게 고소장을 던지는 활동으로 유명해진 Patagonia 창업자 이본 쉬나드의 창업 스토리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이 기업을 몇십년동안 운영해왔고, 앞으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경영할 건지 출사표를 내는, 표지만큼이나 잔잔한 책이다. 단순히 '환경을 우리는 이렇게 사랑해요' 같은 나이브한 울림이 아니라, '나는 이래서 사업을 시작했고, 그것 때문에 느릿느릿 성장하지만, 앞으로도 그것 때문에 사업을 할 거에요'라는 낮은 목소리의 느릿느릿한, 그러나 올곧은 어른의 고백이 들리는 것 같은, 따뜻한 오디오북 같은 책이다. 원서 제목부터가 the education of a 'reluctant businessman'. 아, 솔직해서 멋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대장장이의 삶을 살았고, 클라이밍을 좋아하던 그는 바위에 변형을 주지 않고 등반할 수 있는 '유기농 등반'을 위한 초크를 발명하면서 쉬나드 이큅먼트를 창업한다. 사실 창업한 이유는 이윤이 아닌,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함이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성장하는 기업이 저지르는 전형적인 실수를 모두 저질렀다고 고백하는 그의 진솔함에서, 환경을 위한 기부를 하기 위해 사업을 한다고 고백하자 '그것은 다 헛소리. 회사를 1억 달러쯤에 팔고, 나머지로 재단을 만들어서 원금 투자로 더 큰 기부를 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전문경영인의 대답을 듣고 충격을 받아, '나는 정말 사업을 왜 시작했을까' 괴로워 하는 한 어른의 모습에서 정말 진솔한 어느 인간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정말 힘들게, 힘들게, 사업을 시작하고 35년만에 그가 깨달은 것은, 그가 아주 어릴 때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큰 회사가 되는 것이 아니었으며, 최고의 대기업보다는 최고의 작은 회사가 되기 위해, 이런 '실험'의 한계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책임감 있는 시민으로서 살기 위함이었다는 것이었다. 빠른 성장과 상장, 그리고 양적확대만을 외치고 있는 미친 자본주의의 소용돌이 안에서, 정말 더디게 지금까지 필요한 만큼만 기업을 성장시킨, 한명의 '배우고 싶은 어른'의 철학이 올곧이 느껴지는 책이다.
이 책의 초판을 쓰는 데 15년이 걸렸다고 한다. 전형적인 기업의 규칙에 따르지 않고도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것, 단순히 좋은 성과가 아니라 훨씬 더 압도적인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을 100년 후에도 존재하고 싶은 기업들에게 확실하게 증명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란다. 우리 창업가들이 얼마나 이 원칙 앞에 당당할 수 있을까. 성장과 안정성 사이에서 얼마나 책임감 있게 몇십년동안 원칙에 집중할 수 있을까.
또 그는 수년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제품, 시장, 소재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제품 팀에 던져주고, 다시 산으로 떠난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처럼, 파타고니아의 문화는 "Let my people go surfing"로 대표된다. 창업자가 대장간을 경영하던 시절부터 2미터짜리 파도가 올 때면 작업장의 문을 닫고 파도를 타러 갔다. 좋은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면 언제든 바로 나설 수 있는 근무환경을 만들고, 직원들은 오후에 맘껏 암벽을 타고, 학업을 계속하고,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한다. 알아서 놀고, 알아서 일하고, 알아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믿음이 있는 문화, 그리고 애초에 그렇게 일할 수 있는 직원들을 뽑는 문화. '배우고 싶은 어른'이 나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셨다. 다 읽고 나서 내내 여운이 쉬이 가시질 않았다. Let my people go surfing. 좋은 날씨와 때가 있다면 좋은 파도를 놓치게 하지 말라. 그만큼 알아서 일하고 또 잘 노는 조직 만들기. 반만이라도 따라갈 수 있다면.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책 정보 >> 클릭
배우고 싶은 어른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가장 강력한 것은 솔직함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대단했다, 이런 결단을 내렸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성공을 했다보다는,
나는 우유부단했다, 멍청했다, 두려웠다, 처참했다, 울었다, 괴로웠다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때의 상황을 돌아보며 그 과정을 통해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경영자들의 목소리들이 정말 깊은 울림을 준다.
스타트업은 '절벽에서 뛰어내리면서 비행기 부품들을 조립해 나가며 이것이 날아오르기를 바라는 과정'이라 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창업자로서의 책임감, 창업 초기팀으로서의 부담감, 제국의 기둥으로서의 중압감 앞에 어떤 일기를 써나가야 하는지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는 사람들은 이 배우고 싶은 어른들의 솔직한 회고를 읽어보길 바란다.
적어도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구나, 나만 두려운 게 아니구나, 중요한 것은 두려움을 느끼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두려움을 어떻게 돌파해나갔는가의 늠름함이구나를 깨달으면서 조그마한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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