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혜원 Apr 11. 2021

내가 속하는 조직을 고르는 네 가지 기준

혜원의 이야기(3) - 엔젤투자(선택)

내가 속하는 조직을 고르는 네 가지 기준

이렇게 나를 위한 삶을 살자고 결정하고 나서는, 그럼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어떤 회사에 조인할 것인가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했다. 다음 네 가지가 일련의 경험들을 쌓으면서, 졸업 이전까지 내가 세웠던 네 가지 기준이다.


1. 대표

내가 속하는 조직의 대표를 아주 많이 보기 시작했다. 결국 조직을 나타내는 거울은 그 조직을 이끌고 있는 수장이기 때문이다. 대표의 비전과 철학, 에너지가 나에겐 참 중요했다.

이 첫번째 기둥은 두 가지 항목으로 나뉜다.


1-1. 대표의 실력

대표가 얼마나 멱살 잡고 이 사업체를 잘 끌고 갈 수 있느냐는 기업의 생존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지표이다. 대표가 여러 번의 창업을 통한 '연쇄 창업가'여서, 각각의 사업단계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난관들에 대해 빠삭하고, 이미 탄탄한 네트워크가 있어, 투자를 쉽게 당겨 올 수 있거나 그만큼 훌륭한 인재들을 손쉽게 끌고 올 수 있는지 여부는 굉장히 중요하다. 또한 이번이 첫 창업이라고 하더라도, 천성적으로 천재적인 사업 기질이 있어 이 사업체를 탄탄하게 운영할 수 있다면 그또한 합격점이겠다. 예를 들어, 마크 저커버그도 그의 첫 창업이었지만 페이스북이라는 어마어마한 거대 기업을 지금까지 잘 일궈 내지 않았는가.


'기업의 생존' 때문에 대표의 실력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나에게 이렇게 대표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더더욱 특별한데, 나중에 창업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훌륭한 기업가가 어떻게 사고하고, 경영의 과정에서 어떤 고난을 겪으며 어떻게 그것들을 해결해 나가는지를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것은 마치 살아있는 경영 교과서를 보는 것과 같기 때문에 그것만큼 생생하고 희열이 느껴지는 배움의 기회는 없으리라. 어릴 때부터 삼국지, 열국지 등 영웅전들을 읽어오면서, 나에게 어떤 '주군'을 따를 것인가는 굉장히 중요한 인생의 문제였다. 나는 전쟁에서 이길 주군을 따르고 있는가. 천하통일을 할 수 있는 주군을 모시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이 주군을 얼마나 가까이서 모시고 있는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체화할 수 있는가.


인턴으로 처음 일을 시작했었던 회사의 대표님은 20대의 젊고 똑똑한 분이었는데, 그분이 항상 뛰어난 기업가들에 대한 책을 추천해주셨었다. 예를 들면, 실리콘밸리 경영의 성서와도 같은 <하드씽(The hard things about hard things>, 김정주 넥슨 회장의 창업기를 아주 자세히 써내려간 <Play> 등등.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런 사람들 바로 옆에서 일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훌륭한 가르침의 기회가 있을까 상상하며 그런 기회들을 갈망했다. 또한 똑똑하고 열려 있는 대표님의 의사결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열린 구조의 회사였기 때문에, 어떤 판단기준으로 어떤 의사결정을 내리는지, 어떤 프로그램을 기획을 할 때는 어떤 factor를 고려해서 risk를 대비해야 하는지 등등 다양한 층위에서 직접 배울 수 있었다. 이런 일련의 경험을 통해, '주군'에 대한 이런 기준이 더더욱 굳어진 것 같다. 또 이런 사람을 나 따위의 사회초년생이 바로 옆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작은 조직, 스타트업에 대한 희망도.

1-2. 대표의 선한 영향력

조금이라도 마음을 쉽게 가진다면 아주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미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선'을 조금만 넘으면 된다. 누가 봐도 확실하게 악한 축에 속하는 일들이 있으면서도, '에이, 이걸 사람들이 알겠어', '이 정도는 뭐'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일들도 허다하다. 나는 적어도 내가 속한 조직의 대표는 이 '선함'에 대해 원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회사를 통해 만들어 내고 있는 영향력이 선했으면 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으면 한다.


문제는 이 '선함'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여러가지 기준이 있기 마련이고, grey area에 있는 것도 있겠다. 마더 테레사 수녀가 했던 일처럼 누가 봐도 선한 일들이 있고, 누가 봐도 선을 넘은 횡령이나 배임 등의 마이너스 영역에 있는 죄도 있고, '기발한 앱을 만들어 사람들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다', '좋은 음식을 서빙해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사했다'처럼 애매한 일들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적어도 선함의 양(+), 0, 음(-) 중에 양과 음은 생각보다 쉽게 판단할 수 있기에, 적어도 양의 방향에 있어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은 곳으로 바꾸는 영역에 있는 일이라면 내 인생을 쏟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대표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사업체를 이끌고 있으면 한다.


2. 프로덕트 / 서비스

어떻게 보면 대표에게 바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2-1. 시장에서 환영받는 프로덕트나 서비스를 하고 싶다.

이 '시장'은 여러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는데, 이 제품을 쓰고 있거나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이 제품에 투자하는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는 것. 이 제품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이 제품을 너무 사랑하는 것. 여러가지가 포함될 수 있고, 중복이 많으면 많을수록 성공한 제품이겠다.


2-2. 선한 영향력을 주는 서비스를 하고 싶다.

대표에게 원하는 것과 똑같다. 근본적으로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계속 뿜어내는 그런 서비스를 만들며 나의 인생을 쓰고 싶다. 프로덕트와 서비스에 따라 그 영향력의 크기와 농도는 다르겠지만, 더 깊고, 더 진한 그런 서비스를 하고 싶다. 한번 사는 인생, 적어도 나에겐 떳떳하게.


3. 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중요성은 더 말해 뭐해 싶다. 나는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5명의 평균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깨어 있는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밉고 싫은 것만큼 괴로운 것은 없으리라. 내가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들의 모습은 링크드인 창업자 Jeff Weiner가 아주 쉽게 정의했다. (링크)

첫째, Get shit done.

사업은 동아리를 하는 게 아니니까, 자기가 맡은 할 일은 제대로 끝낼 줄 아는 사람들. 두말해 잔소리다.

둘째, Dream big.

꿈이 크고 이 세상에 어떤 방식으로든 스크래치를 남기고 싶은 사람들. 아직은 젊고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꿈이 큰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 중국 속담에 '적의 대장군은 사로 잡을 수 있어도, 평범한 사람의 야망은 빼앗을 수 없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마음 속에 뜨거운 야망은 품고 있는 사람들일 수록 배울 것이 많다.

셋째, know how to have fun.

여기까지 바라면 이제 솔직히 욕심인 건 안다. 아니, 일도 똑부러지게 잘하고, 야망도 큰데, 놀기까지 잘 해야 돼? 뭐 그렇다. 어차피 짧은 인생, 일할 때는 빡세게 일하고 놀 때도 빡세게 노는 사람들, 솔직히 섹시하다. 나름대로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과 취미 생활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반짝반짝함은 늘 매력적이니까. 그래서 우리 팀에 새로운 분을 모시는 인터뷰를 볼 때 이 질문을 꼭 물어보는 것 같다. "쉴 때 뭐하세요?"


Must not에 해당되는 가장 큰 예시가 이거였다. 다짜고짜 찾아간 두번째 직장. 대표님과 이사님은 훌륭하셨지만, 같이 일하는 팀원들은 회사를 회사이기에, 돈을 버는 곳 이상의 장소가 아닌 것으로 인식했다. 친절하고 성격이 참 좋은 분들이었지만, 궁금한 게 많아 이것 저것 질문을 던지는 막내에게 시큰둥하거나 술자리에서 인생을 뭐 그리 열심히 사냐고 훈수를 두던 분들도 있었다.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터라, 훌륭한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의 장점을 본받아 최대한 빨리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나는 반대로 그런 힘 빠지는 이야기에 영향을 많이 받아 매우 힘든 시기를 보냈었다. 그 시기를 통해 분명하게 깨달았다. 무엇보다 내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work ethic, 야망은 비슷한 수준에는 있어야 열정 있게 한 목표를 지속할 수 있겠구나.



4. 글로벌

'한국만 나라가 아니다'

어릴 때부터 필요 이상으로 중국과 같은 대륙의 영웅담을 흠모하며 커왔던지라, 최대한 넓은 세상으로 뻗어나가는 삶을 살고 싶었다. 집안 형편상 유학을 갈 수는 없었지만,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중국에 한달동안 보내주는 프로그램이라든지, 캐나다 교환학생을 일년동안 간다는지, 자꾸 밖으로 나돌았다.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며, 재미 있는 일들도 정말 많다. 스타트업에 조인을 하게 된 것도 이런 일련의 세상의 유람을 통해 얻게 된 결론이었으므로, 앞으로도 '한국만 나라다'라는 좁은 생각에 빠져 살거나, 마치 내 주변의 주류 사회처럼 살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처럼 호도되는 잘못된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계속 넓은 세상을 보면서 살고 싶다. 인생은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넓게'.

임팩트의 넓이를 크게 하고 싶은 열망 때문이기도 하다. x축을 내가 만드는 서비스에 영향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수, y축을 그 서비스의 임팩트의 강도라고 하면 xy축에 그려지는 사각형의 넓이는 내가 만들 수 있는 임팩트의 크기일터. 당연히 어떤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바꾸는 일도 의미가 있겠지만, 조금 작은 임팩트를 만들어내더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나아가 닿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신나는 일이 없겠다. 그래서 자꾸 글로벌을 겉도나보다.



어머, 갈 회사가 없어!

이렇게 네 가지 기둥을 세우고 나니, 대한민국에 갈 회사가 없었다. 정말이다. 여러 인턴 생활을 통해 이 네 가지 기둥을 세우고 나서 얼마나 절망했는지 모른다.

망했다

그래서 스타트업을 계속 두드리게 되었다. 졸업 즈음에 두들겼었던 세번째 회사는 스타트업이었지만, 같은 팀에 동아리를 했던 선배님들이 계셨기 때문에 적어도 저 똑똑한 사람들이 자기 인생 걸고 하고 있을 텐데 중타 이상은 가겠지 생각이 있었고, 네이버와 티몬에 회사를 여러 번 매각한 경험이 있는 실력파 연쇄 창업가 대표님의 스타트업이었기 때문에.


나는 각 기둥들을 여러 개의 회사를 통해서 알게 되었지만, 지금은 그 첫 시작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내가 무엇을 절대 견디기 힘들어 하는지, 어떤 건 꼭 있어야 하는지 등등 must have과 must not을 나열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다면 나름의 기둥들이 생기고, 경험을 통해 어떤 건 취하고 어떤 건 버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름의 기둥들이 생기고, 경험을 통해 어떤 건 취하고 어떤 건 버리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기준들을 정립하는 것은 누구나 어려울 터. 하나씩, 하나씩 나름의 기준들을 만들어 가면 언젠간 자신에게 정말 딱 맞는 그런 곳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이전 03화 그렇게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