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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혜원 Apr 11. 2021

모르겠고, 우선 글로벌 펼쳐 봐

혜원의 이야기(4) - 데스밸리

모르겠고, 우선 글로벌 펼쳐 봐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로 첫 출근을 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입사한지 첫날, 바로 다음주에 일본 서비스를 런칭하라는 주문을 받았다. 

말그대로, "모르겠고, 우선 글로벌 펼쳐봐."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은 일본어로 번역되어 있던 앱 하나. 당시 콴다는 한국에서 MAU(Monthly Active User; 월간사용자수) 50만명이 갓 넘었고, 이제는 한국에서 교육 분야에서는 경쟁자들이 명함을 내미지 못할 정도로 꽤나 공고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때였다. 한국에서 꽤 잘 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의 글로벌화를 이끌어야 하는 포지션에 대한 부담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회사에 대한 이해, 교육 업계에 대한 이해, B2C 앱에 대한 이해, 서비스 자체에 대한 이해, 일본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상태, 말그대로 하얀 백지의 상태에서 당장 다음주에 성공적으로 앱을 런칭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회사에 쌓여있는 일본 시장에 대한 리서치? 없다. 옆에서 가이드라인을 줄만한 일본 전문가? 없다.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찍어줄 수 있는 대표의 여유? 없다. 뭐라도 회사에 정리된 자료? 없다. 뭐 어쩌라는 말이지?


우선 정신을 차리고, 콴다라는 앱의 key metric은 무엇인지, 질문 답변이 잘 이루어지려면 선생님과 학생의 비율이 어떻게 밸런스를 이루어야 하는지, 사진을 찍어서 정확한 답이 나오는 비율을 뜻하는 검색 성공률은 어떻게 올릴 수 있는지, 학생 앱과 선생님 앱 안의 주요 기능은 무엇인지 파악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나름의 factor를 바탕으로 연간 financial & strategic plan을 짜봤는데,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일주일만에 만든 연간 계획 치고는 꽤 잘 짰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대표는 서비스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낮다고 잘 들여다보지도 않고 깠다.

이리저리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하던 우리의 전략

슬퍼하고, 이 회사에 온 게 맞나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우선 성공적으로 안착시켜야만 했다. 일주일만에 앱이 나왔는데, 학생들이 문제를 풀어줄 만한 선생님들이 알아서 들어올리 없었다. 콴다의 선생님 앱은 한국에서는 이미 대학생의 대부분은 아는 용돈벌이 앱이었지만, 일본에서는 번역도 서툴고 UI도 일본에 맞게 되어 있지 않은, 말그대로 아무도 안 쓰는 그냥 생초짜 앱이었던 것이다. 일본에 있는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오빠, 정말 미안한데 도쿄대, 와세다대 출신 중에 아는 사람 있어? 있으면 소개시켜 줘. 예전에 교환학생 때 친하게 지냈던 일본인 룸메, 일본 사업할 때 만났던 비즈니스 counterpart들에게도 몇년만에 염치 불구하고 다 연락을 돌렸다. Yuka, long time no see, how are you doing?...  그렇게 한두명씩 카톡과 페이스북 메시지로 알음알음 앱을 소개하는 문구를 보내고, 다운로드 받아서 써봐달라는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는 나지만 하나 하나 번역기 돌려가면서 일본인 학생이 올리는 문제를 해석해보고, 영어나 간단한 수학문제처럼 대응할 수 있는 문제는 점심시간에도 회사 쇼파에 쪼그려 앉아 문제가 올라오면 풀고, 대답해줬다. 앱 안에서의 더 빠른 인터렉션을 책임지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었다. 그렇게 일본 앱은 조금 조금씩 유저가 늘기 시작했고, '적어도 누군가는 쓰는' 레벨까지 올려 놓았다. 아주 초보적인 첫 단계를 그렇게, 그렇게 겨우 넘겼다.


이제 일본을 좀 한숨 놓나 싶었더니, 다음 달에는 갑자기 경쟁사에서 전세계를 타겟팅한 앱을 내놓았다. 날짜도 기억난다. 2019년 1월 1일. 새해를 맞아 팀장들끼리 한달에 한번은 다같이 모여 저녁이라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자는 날이었는데, 첫 모임부터 대표가 한껏 우울한 표정으로 우리 이제 큰일 났다고 이야기하니까 있던 힘도 다 빠져 버렸다. 일본에서 겨우 한 단계 넘겼는데, 이제는 전세계에서? 그리고 '스타트업답게' 곧바로 그주부터 영어 앱 런칭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제발! 아무런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태에서 영어 앱에 들어가는 컨텐츠를 소싱하기 위해 난생 본적도 없는 몇백 명의 인도인들에게 링크드인으로, 메일로 구구절절 프로젝트 설명을 하면서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다. 2019년 겨울은 300명이 넘는 인도인들과 밤낮 없이 연락을 주고 받았던 정말 끔찍했던 나날들로 기억이 된다. 새벽에도 문의가 들어 오고, 결과물 퀄리티 체크하고, 피드백 주고. 그걸 말그대로 24시간 했던, 저녁 먹는 시간도 없어서 허둥대던 나날들이었다. 그리고 어찌 저찌 한두달만에 영어 앱을 런칭을 했고, 지금은 그 서비스가 전세계에서 800만명이 넘는 학생들이 매달 쓰는 앱으로 성장을 하였다.


나의 MBTI는 ENFJ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J다. 철저하며 조직적, 명확성, 예측 가능성, 계획 중시가 J들에게 해당되는 키워드이다. 예를 들면 나는 학교 다닐 때에도 매일, 매주, 매달 계획을 철저하게 짜고, 나의 1년 뒤, 3년 뒤, 5년 뒤, 10년 뒤 계획을 짜놓는 '계획충'이었다. 그리고 새해 1월 1일에는 만다라 차트를 그려 놓고, 나의 인생의 요소들을 조목조목 저번 연도와 얼만큼 성장했는지, 올해는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지 구구절절 써보는 '못 말리는 계획충'이었다. 그런 계획충에게,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키는 사람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과 꿈을 그리며, 어떤 결과물이 있을지 모르는 프로젝트를 롤링한다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이것이 나의 데스밸리였다. 


스타트업에서 '사수', '프로세스', '예측가능성'을 기대하지 않고, 불모지에서 나의 성장, 서비스의 성장, 그리고 회사의 성장까지 이끌어야 하는 예측 불가능성. 조인 직후 그리고 일본, 영어에 이어 베트남, 인도네시아 서비스를 런칭을 하면서 나는 이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데스밸리에서 무수히 맨땅에 헤딩을 하며 허우적 거렸다. 없던 시장을 개척하는 스타트업은 어떨까, 그 광활함과 비전에 가슴이 뛰지 않을까 예측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여기서 롱런하려면 이런 데스밸리를 하나도 아니고 계속 굴곡을 겪으면서 이겨내야 한다는 점이다.



리더십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리더란 어떤 사람인가.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겠지만, 내가 정의하는 리더는 다음과 같다. 첫째, 어떤 목표를 보고 가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둘째, 그것을 찍고 잘 갈 수 있도록 함께 하는 팀원들을 독려하고 임파워할 수 있어야 한다. 비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좋은 리더란 가야하는 별을 정확하게 찍고, 그곳에 갈 수 있는 로켓을 잘 만들어야 하며, 그 로켓에 같이 탈 팀원들에게 끊임없이 달릴 수 있도록 연료를 시의적절하게 넣어줄 수 있는 선장이다. 그게 돈이든, 비전이든. 이런 나름대로의 리더로서의 정의가 생기기까지 많은 굴곡을 겪었다. 첫 날 조인하였을 때 1인 팀으로 시작하여, 최근 30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있는 세 팀이 들어있는 부서 전체를 리딩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팀 키우기 : 좋은 사람 데리고 오기

첫 날 왔는데, 내가 들어오면서 글로벌 팀이란 곳이 신설되었고, 일본 운영 업무를 맡아줄 한 분이 덜렁 와 계셨다. 첫 날부터 그 분을 모시고 휘몰아치는 일본어 앱 런칭을 진두지휘했었어야 하는데, 우선 타임라인도, 팀 구성도, 얼라인먼트도 엉망이었다. 리더란 고로 이끌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알려줄 사람도 없고, 해야 하는 일도 회사 내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엉망진창일 수 밖에.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리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얻고 쟁취하여 가능한 일인데, 첫날부터 같이 출근한 사람에게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과 업무 지시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고역이었다. 대표가 말하는대로 "오늘부터 이 사람이 리더할 거에요"가 아닌, 그것을 따라잡을만한 시간과 업무 분장, 그리고 플래닝,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했었다. 즉 리더십은 누가 시킨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사람들로부터 얻는 일이었던 것이다.

Leadership is not given, it is earned.


따라서 팀장 첫 날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업무를 빠르게 습득함과 동시에, 나와 함께 할 팀원들을 모셔오는 일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나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나의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는 사람. 다른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고 있었지만 나중에 창업을 한다면 꼭 같이 하고 싶었던 일을 잘하는 똑똑한 지인을 빠르게 모셔왔고, 또 그 다음달에는 역시나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꼼꼼하고 신뢰감이 가는 지인을 조인시켰다. 그렇게 첫 세달에 세 분, 그 다음 세달에 세분, 그리고 그 뒤 이년 반동안 지금 회사에 모시고 온 분이 직간접적으로 열 분은 족히 되는 것 같다. 내가 이야기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정성이 바탕이 되어 이 여정을 나와 기꺼이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로 시작하여 리더로서의 첫 단추를 끼워 나가기 시작했다.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얻어가는 여정이었다.


팀 유지하기 : 좋은 사람 리테인하기

예로부터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고 하였다. 성을 빼앗기보다, 계속 지키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다. 글로벌 사업이 빠르게 커짐에 따라, 해야 하는 일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고, 기존에 있던 사람들이 아무리 일당백을 한다고 해도 이제는 어느 정도의 경험이 바탕이 된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까지는 보통 주니어들이 팀에 가득했었더라면, 경력 10년이 넘는 분을 처음으로 팀에 모셔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된 것이다. 처음 오셨던 베트남 지사장님은 나보다 11살이 많으신 분이었다. 많은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이 젊은 회사가 그동안 주먹구구식으로라도 쌓아왔던 성과들과 인사이트들을 존중해주셨고 11살이나 어린 사람이 조직장이라는 점에 불쾌한 기색 없이 정말 한 팀으로 일해주셨다. 시너지가 나서 원래 6달 걸렸던 일을 3달만에 끝내는 기염을 토하면서 사업과 조직은 계속 더 속도감 있게 커질 수 있는 힘을 얻었었다.


그렇게 팀이 커지면서 더 많은 경험이 요구되는 난이도 있는 일들이 생겼고, 나의 두 번째 데스밸리가 시작되었다. 새로 조직에 온 사람들은 모두가 다른 인생을 겪어온 사람들이었기에, 경력도 달랐고, 회사에 바라는 것, 리더에게 바라는 것이 모두 달랐고, 챌린징했다. 매니지먼트란 내가 진정으로 잘한다고 자부했었던 사람에 대한 설득 그 이상의 능력이 필요한 것이었다. 적어도 내가 진정으로 믿는 비전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고 함께 하자고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바탕으로 모셔 왔던 분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게 되면서 나의 커버리지에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20년 초, 코로나가 터지게 되면서 '다이내믹함이 거의 모든 보상'이라고 느껴질 수 있는 글로벌 팀에게 큰 위기가 찾아왔다. 출장을 가지도 못하고, 외국에 직접 발을 디디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 하늘길이 열리는 것을 기다리며 팀원들에게 가슴 뛰는 비전을 설득하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런 큰 비전을 함께 이루게 해줄게요라고 설득하여 모셔왔던 분들이 실망하여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스타트업이라 외부 상황에 의해 많은 것들이 결정되고, 더군다나 코로나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역병 때문에 계획했던 것도 다 무너지고, 글로벌에 대한 큰 열정을 가지고 있던 나도 참 힘들었지만, 나를 가장 가슴 아프게 했던 것은 내가 말한 것을 지키지 못한 나에 대한 분노와 그 말을 믿어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사수'를 원하고, '프로세스'를 원하고, '가슴 뛰는 일'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알맞게 그 연료를 채워 주지 못한 것은 여실히 리더의 잘못이었다. 뼈 아팠다.

서른 명이 다 되어 가는 큰 팀을 가지게 될 때까지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니다. 나를 진정으로 믿어 주었고, 우리가 함께 계획하여 이뤄낸 엄청난 성과들로 점철된 2020년이었다. 새로운 네 개의 국가들에서 단숨에 교육 앱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고, 5달만에 그렇게 어렵다던 동남아에서의 리텐션을 500%나 증가시켰고, 원래 해왔던 프로젝트의 비용과 시간을 더 짧게, 날카롭게 깎아갔던 가슴 뛰는 한해였다. 내가 모시는 팀원들은 스무 명이 넘게 되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느꼈다. 리더십은 그 자리에 있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고 얻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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