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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혜원 Apr 11. 2021

안정이 불안정, 불안정이 안정이다

혜원의 이야기(5) - 스케일업(성장)

동물원 이야기

아주 큰 동물원이 있다. 그 안에는 많은 사자들이 득실 거린다. 동물원의 사자들은 동물원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때가 되면 사육사가 주는 고기를 맛있게 받아 먹었다. 또 초원이 있다. 그곳에도 많은 사자들이 득실 거린다. 초원의 사자들은 자연에서 태어났고, 사육사가 주는 고기 따위 없이 태어난 그 순간부터 자신이 먹이를 사냥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적응하면 겨우 살아 남았고, 적응 못하면 먹이를 얻기는 커녕 더 사나운 동물의 먹이가 되어 새끼 때 없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이 동물원이 자금난에 휘말렸다. 사육사는 일찍이 잘렸고, 동물원에서도 이 사자들을 관리할 방법이 없어 자연에 놓아 주기로 하였다. 동물원과 초원을 막고 있던 굳은 쇠상찰이 없어진 것이다. 사실 사육사가 주는 잘 잘라진 고기 밖에 먹을 줄 몰랐던 동물원의 사자들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발톱도, 이빨도 어떻게 쓸 줄 잘 몰랐다. 그리고 곧 동물원의 쇠창살이 열렸다. 굶주리고 있던 초원의 사자들이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무섭지만 이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더 정확히는 202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 중년들의 이야기일 수 있다. 지금까지 열심히 회사가 주는 월급을 착실히 받아서 모아 왔지만, 반대로 이 수많은 동물원들이 없어지고 쇠창살이 없어졌을 때 어떻게 먹이를 사냥하는지 몰라 굶어죽거나, 오히려 초원에서 목숨을 걸고 발톱과 이빨을 갈고 닦았던 굶주린 사자들의 먹이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세대가 처한 상황, 그래서 굳이 '첫 단추'를 스타트업으로 잘못(?) 끼우려는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첫 회사로 스타트업에 가도 되나요?


회사가 망하면 어떡하죠? 대기업 간판이 없는데 걱정 안 되나요?

다 맞는 말인데, 그건 동물원이 굳건하게 영속할 때의 이야기다. 90년대를 휘어잡았던 노키아는 이제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고, 엑손모빌, GE도 전세계 시총 10위권에서 많이 멀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적자 운영하다가는 망해 없어져 버릴 것이라고 저주하던 쿠팡은 상장 후 단숨에 시총 100조 회사가 되었다. 이제 10년에 한번씩도 아니고, 5년, 1년 안에도 업계가 휙휙 바뀌고, 회사가 생겨났다가 없어지는데 그 어떤 누가 사육사만 믿고 발톱을 그냥 냅둘 것인가.

"안정적인 것이 한없이 불안정적이고, 불안정적인 것이 한없이 안정적이다"


인생은 예측이 아닌 대응

스타트업에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이 '불확실성'이다. 예상했던 것만큼 작은 테스트들의 성과가 안 나와 회사의 자금이 말라 비틀어져, 회사가 망해 버리는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겨우 펀딩을 받아 와서 직원들 월급은 주었는데 옆집의 큰 경쟁사가 똑같은 서비스를 출시해 경쟁에 들어가야 한다. 겨우 급한 불을 꺼서 경쟁에서는 이겼는데, 옆 회사에서 연봉을 파격적으로 준다고 해서 우수한 팀원들이 우수수 이직을 해버릴 수도 있다. 혹은 이 모든 것들이 한번에 일어날 수도 있는 곳이 스타트업이다.


가장 크게 어떤 '짬빠'가 생겼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런 돌발상황들에 대해 의연히 대처하는 능력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수를 먼저 두는 것'에 대한 지혜를 논하지만, 사실상 내일도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이 소용돌이 속에서는 애써 '완벽한 예측'에 집착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의 예측'과, '끝내주는 대응'을 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에서 무엇을 배웠냐고 물으신다면

누가 알았을 것인가. 아니, 1920년도 아니고 2020년에 '역병' 때문에 전세계가 올스탑되는 일이 일어나다니. 어릴 적에 2020년에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나올 줄 알았는데, 모두들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약국 앞에 길게 줄을 서있었던 충격적인 광경을 잊을 수가 없다. 글로벌 사업도 직격타를 맞았다. 당장 해외에 건너 가서 현지에 있는 교육 회사들을 만나고 현지의 교육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한 많은 작업들을 해야 하는데, 하늘길이 꽉 막힌 것이다. 절망했다. 2020년 2월 말에 한국에서 코로나가 심각해졌으니 3월 초까지도 조금만 기다리면 해외에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곧 직감을 했다. 기존에 해왔던 방식으로는 못할 것 같았다. 생각보다 꽤 오랫동안. 그래서 그전에는 일본과 베트남에서 우리가 직접 해왔던 일들을 대신 해줄 수 있는 업체들이나 사람들을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다. 한 나라도 아니고 인도, 인도네시아 그리고 태국에서, 휴가로나 가봤지 출장으로는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들의 교육 시장을 단숨에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사업 개발(Business Development)이란 결국 내가 직접 들어가지 않아도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란 깨달음이 있었고, 그 시스템을 가장 싼 비용과 가장 효율적인 인력으로 돌릴 수 있게 만들었다.


결국 사업이 돌아가게 하는 것은 건축으로 비유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첫째, 이 커다란 건물이 몇 층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는 것 : 앞으로 펼치려는 일이 정확히 어떤 일인지 알아야 한다. 이 커다란 건물의 목적과 몇 층의 스케일인지 알고 판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이 건물을 짓는 자재를 파악하고 소싱하는 것 : 비유적인데, 건물을 짓는 사람들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자재라고 표현한 이유는 결국은 그 것을 만든 사람들의 관점과 색깔이 그대로 사업에 묻어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건물이 나중에 신의 처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성당을 짓는 사람과, 이 건물이 나중에 뭐가 되든 나는 우선 돈만 받아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성당을 짓는 인부의 결과물은 확연히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건물의 일체가 될 사람들의 역량과 색깔이 어때야 하는지 파악하고, 그런 색채를 가진 인재들을 잘 모시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이 건물을 짓는 데에 얼마나 돈이 필요한지 파악하는 것 : 더 말해 무엇하랴. 이 건물은 3층짜리 석조 건물이었는데, 5천만원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과 20억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은 다르다. 사업을 이루는 각 프로젝트의 예산과 그 구조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자본금이든 펀딩을 통해서든 예비하고 있어야 건축이 잘 끝날 수 있으리라.


넷째, 무엇보다, 잘 짓는 것 : 뭘 해야 하는지도 알고, 돈도 있고, 좋은 자재도 구해놓았으면 잘 지어야지. 각 층을 돌아다니며 어떤 것들이 병목이 되고 있는지 파악하고 알맞게 trouble shooting을 하고 다시 이 시스템이 돌아갈 수 있도록 윤활제 역할이 되는 것. 그것이 사업을 총괄하는 사람의 할 일이었다.


말이 쉽지, 이런 사이클들을 몇 번 돌아보니 결국 사업이란 이런 아름다운 건물 하나를 '잘' 만드는 것이란 깨달음이 있었다. 그리고 스타트업에서 파운더가 아닌 사람이 사업을 총괄한다는 것은 아주 챌린징하긴 하지만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대표가 VC에게 받아오는 자금을 가지고, 나의 이름을 걸고 의미 있는 사업을 펼쳐 볼 수 있다는 것. 즉, '남이 남에게 빌려온 돈'을 가지고 내 사업을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물론, 옆에서 아주 가까이 지켜보니 이건 정말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 가까이서 지켜보니 이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도 보았고,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을 만들어갈 때 느껴지는 희열도 간접적이게나마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점점 더 나는 이런 고통의 소굴(?)로 들어가는 일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 괴롭고, 한편으론 즐겁다. 그렇다. 변태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보는 눈

지금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 2018년 11월, 나의 사번은 26번이었다. 모두 엔지니어, 디자이너로 구성되어 있었고, 비즈니스 담당으로는 첫 사람이었다. 그리고 2021년 3월 현재 180명이 우리 회사에 계신다. 숫자에서 볼 수 있듯이, 아무 것도 없는 회사에서 팀과 부서를 만들어 가면서 정말 수많은 인터뷰를 봤다. 심지어 초기가 아니라 회사에 온지 2년이 넘었을 어떤 시점에서도 한 팀을 한달만에 신설을 해야 하는 때가 있었고, 그때 하루에 인터뷰를 3개씩 보던 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짧게는 1시간, 길어봤자 1시간 반 밖에 되지 않는 시간 안에 이 사람에 대해 가장 잘 알 수 있는 나름의 핵심 질문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장 큰 실패는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했는가
옆 사람들이 다 미친 짓이라고 그만두라고 만류하였지만, 결국 도전해서 이뤄낸 경험이 있는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당신을 부르는 별명은 무엇인가
이 회사에 입사가 아니라 퇴사를 하게 된다면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 것 같은가


나름대로의 기준이 생겼고, 어떤 아름다운 건물을 상상하고 있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눈이 조금은 생겼다고 자부한다. 이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눈일터. 앞으로 나의 사업체를 꾸밀 때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사를 알아볼 때에도 부동산 아주머니와 어떤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지에도 도움을 주었다. 이 미친 세상의 지팡이 1을 획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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