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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혜원 Apr 11. 2021

도피 여행, 그리고 선택

유정의 이야기(2) - 엔젤투자(선택)

도피 여행

우울함을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 아닌 해결책으로 생각했던 것은 '도피 여행'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너무 힘드니까 머리를 조금 식혀보자 하는 생각. 여행 가면 시간이 많으니까 차분히 다시 생각해보지 뭐, 하는 생각. 당시에 중국을 주제로 한 트레바리 클럽을 하고 있었는데 트레바리 회원들끼리 선전-홍콩 여행을 다녀오는 계획이 잡혀있었다. 그럼 홍콩  여행을 가는 김에 상하이에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한테 연락해볼까? 그렇게 여행일자를 잡았다. 나는 상하이에서 친구와 지내다가 홍콩에서, 트레바리라는 독서클럽을 같이 했던 사람들과 합류하기로 했다.


여행을 가기 며칠 전에는 혜원이와 연지와 점심을 먹었다. 한 달 전에 같은 스타트업에서 일하기 시작한 친구들이었는데, 글로벌 팀에서 인턴을 구하고 있다고 해서 회사 얘기도 들을 겸 연남동에 찾아갔다. 사실 인턴 자리보다는 친구들이랑 점심 먹고 수다를 떨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인지 당시 했던 회사 얘기나 점심을 먹고 둘러본 회사 모습보다는, 점심을 먹고 찾아간 카페에서 마셨던 커피 이름이 더 기억에 남는다. '전투력을 키워 주는 커피'. 그 커피 이름을 보면서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게 바로 전투력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여러 문을 두들겨봤지만 나에게 열리는 문은 없다고 생각하며, 다른 문을 두드릴 용기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상하이

12월 9일 상하이의 하늘은 흐렸다. 친구를 공항에서 만나고 같이 상하이 퓨전 음식점에 가서 인생 처음으로 개구리를 먹었다. 고기와 생선의 중간 정도의 식감이 느껴졌다. 먹기 전에는 몸서리를 쳤지만, 막상 먹으니 꽤 맛있었다.


12월 10일. 바람이 많이 불고 비가 많이 왔다. 친구가 고급스러운 브런치 레스토랑을 데려가줘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친구야, 내가 이러이러한 시도들을 했고 지금 스타트업 인턴이라는 선택지가 있는데 고민중이야 - 어떤 것 같아? 친구는 스타트업에서의 인턴 경험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걱정을 해줬다.

12월 11일도 비가 많이 왔다. 느즈막히 밖에 나가서 백화점을 구경하다가 오후에는 친구 집 근처 찻집을 갔다. 잔잔한 음악을 틀고 우롱차를 마시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데 문득 이게 행복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비가 오고 날씨가 안 좋아도 차 한 잔 마실 시간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었다.

상하이에서의 나머지 3일은 그렇게 많았던 근심걱정을 잠시 내려놓으려고 노력했다. 발 마사지를 받을 때에는, 와 너무 좋다. 흑설탕버블티를 마실 때에는, 와 엄청 맛있다. 상하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때에는, 와 너무 평화롭다. 내가 지금 경험하고 느끼는 것에 집중하며 며칠을 보내니 기분이 한껏 가벼워졌다. (때로는 지나치게) 진지한 고민들이 머릿속에 가득찰 때, 단순하고 원초적인 감각들로 나를 깨워보기로 했다.


홍콩

상하이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홍콩으로 날아갔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할지 다시 고민해볼 마음의 여유가 생긴 참이었다. 상하이에서 먹었던 개구리와 비오는 날의 찻집을 생각했다.


일요일 아침. 토스트와 밀크티로 유명한 랑퐁유엔 앞에 줄서 아침 먹기를 기다리면서, 같이 여행온 분 중에 대기업을 잠깐 다니다 퇴사하신 분께 무엇을 배울 수 있었는지 여쭤봤다. 3~5년 정도 일하면 팀장이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리고, 팀끼리 어떻게 협업하는지, 그리고 어떤 팀에 어떤 사람을 배치하는지에 따라 성과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배울 수 있어요. 대기업을 다니고 계신 다른 분이 그걸 듣고, 또 배울 수 있는 것은 눈치라고 덧붙이셨다.


오후 4시에 혜원이와 인턴 자리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카페에 자리를 잡아 커피를 하나 시켜놓고, 아이폰 노트에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야기해보기로 한 주제 중에서 아래 문장에 한참 머물렀다.   

급변하는 상황에 대한 감내능력, 다이내믹함을 불편해하지 않고 즐기면서 스스로를 적응시킬 수 있는 능력 (가장 중요)


나와 정말 어울리지 않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내가 지금까지 두드려봤던 곳은 대체로 '급변하는 상황', '다이내믹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면 나는 (적어도 겉으로는) 굉장히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성격이었다. 불확실한 것을 즐기고 적응하는 능력이라니, 이 인턴쉽을 고려해보는게 나와 맞긴 한걸까 잠깐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나는 급변하는 상황에 대한 감내능력이 없고, 다이내믹함을 불편해하기 때문에 이 일과 안맞을 것 같아. 지금 돌이켜보면 그 상상만으로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다. 무대공포증을 안고 토론대회에 꾸역꾸역 참가했던 고등학생의 나를 생각했다. 적은 인원 앞에서 발표해도 목소리와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는데, 토론대회에서 잘하기 어려울거야 라는 내면의 목소리에 스스로 분했던 것이 끝까지 나를 붙잡아준 원동력이었다. 10년 전 그 때도 해냈는데, 이번에도 나를 테스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구리도 먹어보니까 생각보다 괜찮았잖아? 비오는 날이 꼭 우울할 필요는 없잖아? 내가 경험해볼 수 있는 것은 다 경험해보자, 그 뒤에 다시 나를 판단해도 늦지 않다.


전투력을 키워주는 커피가 힘을 발휘한걸까. 그렇게 혜원이와 통화를 했고, 몇 주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마음고생한 것 치고는 허망하게(?) 인턴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스타트업 인턴 생활

친구가 설명해준 스타트업의 다이내믹함은 입사하고 며칠만에 체감할 수 있었다. 체계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것을 내가 해보고, 아무도 체계화해두지 않은 것을 내가 체계화해야 했다.


나의 첫 임무는 해외 서비스 제공에 핵심적인 데이터베이스를 쌓기 위한 아르바이트 구인과 프로젝트 운영이었다. 아르바이트에 관심 있어할 만한 사람들을 모집하기 위해 해외 대학들에 콜드 메일을 뿌리고 하루에도 수십 명의 외국인들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아르바이트생이 모두 구해진 다음에는, 업무를 분배하고 결과물을 검수하고 아르바이트에 대한 보상을 정산해주었다. 아르바이트생들과 대화하는 메신저는 평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울렸다. 말없이 업무를 중단하고 잠수를 타거나 더 이상 못하겠다고 연락오는 아르바이트생이 계속 생겨났다.

인턴을 할 당시의 책상 배경

수십 명의 아르바이트생의 결과물을 검토하고, 메신저에 일일이 대응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을 구하는 일이 두 달 넘게 반복되면서 피로가 쌓여갔다. 스타트업에서의 인턴 경험이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걱정했던 친구가 생각나기도 했다. 인턴 기간이 끝나가면서 나는 또다른 문을 두드려볼지 이 곳에 더 있을지 선택해야만 했다.


그리고 선택

선택을 앞두고 지난 몇개월간의 인턴생활과 나라는 사람을 돌아보았다. 오기를 부리게 만들었던, 다이나믹함을 감내하는 능력은 과연 나에게 있었나? 불확실성에 적응해갈 수 있었나? 나의 예상과 다르게, 답은 'Yes'였다. 아르바이트생들을 관리하면서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꽤 높은 피로감을 안겨주었지만, '안되겠다'라고 생각한 상황을 결국 '되게끔'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체계화된 것이 없는 곳에 조금씩 체계가 세워지는 변화를 보면서 '만드는 것'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스스로에게 테스트해보고 싶었던 것에 대한 결과는 확인했다. 그 다음은? 이 직장이 나를 위한 직장인지 파악해보는 일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스타트업이 과연 유니콘으로 성장할 것인가?"를 중요하게 보지는 않았고 스스로 그것을 판단할 역량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첫 직장을 선택할 당시에는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여기서 찾을 수 있을지, 회사의 방향성과 문화가 나와 맞는지 더 중요했다. 이 조건이 충족되어야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계발하고, 스스로도 뿌듯할 만한 전문성을 키워, 결국 사회에 유의미한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아래 3가지 요소를 기준으로 스타트업에서 계속 일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첫째, 자율성. 

팀원과 팀 리더의 구분이 있었지만 그 이상의 수직구조는 없었다. 팀원은 리더가 준 일만 수행하지 않고 스스로 일을 발굴해서 실행해야 했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은 없었고 내가 할 일만 다 하면 끝이었다. 자율이 주어지는 만큼 책임이 큰 환경이었다. 놀랍게도, 나는 이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원하는 대학에 떨어져 반수를 할 때에도 낮잠 자면 깨운다는 재수 학원이 싫어 독학 반수를 결심했던 나였다. "내가 낮잠 자고 싶을 때 한두시간 자고 일어나서 효율적으로 공부하면 되지, 왜 자는 시간까지 남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하나"라는, 지금 돌이켜보면 웃음이 나오는 이유였지만 자율이 큰 만큼 책임을 지겠다는 나름의 선언이었다. 작은 규모의 회사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자율성을 얻기 힘들 것이고, 그만큼 업무 범위가 좁아지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탐색하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다.


둘째, 글로벌. 

나는 몸담고 있는 회사의 서비스가 세계 여러 국가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이길 바랐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한국인만이 아닌, 다양한 배경을 가진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었으면 했다. 내가 아직 모르는 세계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다양한 색깔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며 에너지를 받고 싶었다. 확장되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내가 인턴을 했을 당시에 회사는 막 한국을 벗어나 글로벌로 사업을 넓히려는 단계였다.

사무실 라운지에 모여 회의하는 풍경

셋째, 사람들. 

인턴쉽 업무는 힘들었지만 회사 동료들은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업무 스트레스는 덜하지만 같이 일하는 팀장이나 동료 때문에 힘든 상황과,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정말 좋지만 업무 스트레스는 높은 상황 중에서 한 가지를 고르라면, 나는 후자를 선택할 사람이었다. 업무는 내가 컨트롤할 수 있었고 스트레스도 내가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었지만, 타인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바꾸기 어려운 사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 것 같았다.


위의 기준을 모두 만족시키는 회사가 여기밖에 없는가? 라고 한다면, 그렇다고 하기는 어렵다. 내가 모든 곳을 경험해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하지만 반대로 또 여러 번의 인턴쉽을 거쳐 위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회사를 다시 찾기까지는 몇 개월, 혹은 몇 년이 걸릴 수 있었다. 나는 지금 찾은 기회에 베팅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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