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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혜원 Apr 11. 2021

카멜레온처럼 일할 수 있는 사람

유정의 이야기(4) - 스케일업(성장)

카멜레온처럼 일할 수 있는 사람

입사한 직후부터 다양한 일을 했지만, PO로 직무 전환을 한 다음에도 한 가지 주제의 프로젝트만 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홈 화면을 리뉴얼하는 프로젝트 팀에 들어가서 다른 PM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다가, 신규 국가 출시 프로젝트의 메인 PM이 되어 태국어와 스페인어 서비스를 냈다. 그 뒤에는 마케팅팀에서 진행하는 광고 캠페인 채널이 아닌, 즉 오가닉한 방법으로 신규 사용자를 데려올 수 있을 프로젝트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모바일 앱의 특정 지점에 공유하기 기능을 넣어서 아직 앱을 설치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서비스 일부를 미리 체험해보게 하고 앱 다운로드를 유도했다. 한편으로는 기존 서비스 소개 홈페이지를 갈아엎고(?) 검색엔진최적화(SEO)를 통해 구글 검색으로 잠재적 신규 사용자들이 우리 서비스를 발견하고 모바일 앱까지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미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 사용자들의 재방문을 높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KPI(Key Performance Index; 핵심성과지표)가 다른 여러 프로젝트들을 해왔기 때문에 어떤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을 해보고 고속 성장해야 하는 단계에서는 어떤 종류의 일이든지 빠르게 알아보고 추진시키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알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부딪혀보는 자세가 업무에 큰 도움이 된다.


신규 국가 출시 프로젝트를 했을 때에도 나는 해당 국가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었다. 하지만 현지 언어와 문화와 교육시장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모든 정보를 모은 다음에야 신규 국가 확장을 준비하는 것이 항상 가장 좋은 방법일까? 모든 것이 완벽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최소한의 현지화와 사용성을 확보한 상태에서 먼저 새로운 언어로 런칭하고 트래픽과 유저 반응을 확인하면서 서비스를 최적화시키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SEO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개념인지는 이해가 되고 중요한 것도 알겠는데,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SEO 프로젝트를 한다고 했을 때 해당 경험을 바탕으로 도와줄 사람이 사내에 있지도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구글링을 통해 조금씩 이해도를 높여가고, 관련 개발 문서를 읽어야 할 때면 개발자 분들께 맡겨서 알아봐달라고 하고, SEO 프로젝트 경험이 있는 외부 전문가들에게 컨설팅을 받아보고, 뭐라도 조금씩 해보면서 감을 잡아가는 것이었다.

컨설팅 미팅 노트

PO로서 1년이 지난 지금, 어떤 역량을 가장 성장시킬 수 있었는지 누군가 물어본다면 '습득력'과 '끈기'라고 답할 것 같다. 내가 잘 모르는 영역의 일이지만 내가 맡아야 하는 상황들이 있었기에, 그 미지의 세계에서 카멜레온처럼 최대한 빠르게 많은 것을 습득하도록 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잘 모르지만 일단 해보면서 내가 전문가가 되보겠다"라는 마음으로 스스로 동기부여하면서,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끈기를 기를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주니어이기 때문에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보면서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지만, 연차가 쌓였을 때 나의 "강점"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 필요할거라 생각한다. 또한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성장 단계에 있는 회사에 있느냐에 따라 기대되는 PO의 역할이 달라질 수 있다. 초창기 스타트업에서는 '온갖 일'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더 필요하게 마련이고, 이미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스타트업에서는 해당 사업 분야에 깊은 이해도가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다만 한 가지만 파다가 갑자기 여러 종류의 일을 맡았을 때 혼란스러울 수는 있어도, 여러 종류의 일을 경험한 상태에서 한 가지를 집중적으로 발전시키는 일은 더 수월할 것이라 생각한다.



what & how에서 나아가, why를 계속 묻는 사람

지금 돌아보면, 내가 직무 전환을 하기 전에 가지고 있던 PO의 역할은 "화면 기획자"에 가까웠다. 어떤 화면에 들어갈 요소들과 UX를 정의하고, 그것을 디자이너와 개발자들에게 공유하고, QA(Quality Assurance)를 하면서 기획이 의도대로 구현되었는지 확인하는 일. 그리고 PO로 직무 전환을 한 후 한동안은 이 것을 잘 수행하는 것이 내 일을 잘하는 것이라 여겼다. 실제로 PO로서 초반에 맡았던 일도 안드로이드에 구현되어있는 것을 iOS에 똑같이 출시하거나, 이미 있는 서비스를 다른 언어로 바꿔서 출시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처음부터 설계하는 과정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점점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깨달았다. PO는 해야 할 것이 정해진 상황에서 어떤 것들을(what) 어떻게(how) 잘 구현하는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에 앞서,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why)를 가장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가 잘 아는 서비스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놓고 생각해보자. 선물하기 메뉴에서 '선물함'에 들어가면 내가 선물로 받고 싶은 상품들을 담아둘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선물을 보내려고 할 때 그 리스트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기능들은 어떻게 추가되었을까?

카카오톡 선물하기 PO(카카오톡은 'PO' 대신 '프로덕트 매니저'라는 용어로 부르는 것 같다)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카카오톡을 통해서 더 많이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할까?"를 항상 고민할 것이다. 이 고민은 자연스럽게 "카카오톡으로 선물을 주고받는 것에 불편함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사용자 설문조사나 인터뷰,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서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고르기가 어렵다"라는 구체적인 문제점을 발견했을 것이다. 결국, 선물하기 팀에서 해야 할 일은 상대방의 취향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 도구는, '위시리스트'라는 기능을 통해 구현되었다.


여기서 '위시리스트'라는 기능을 정하고(what), 어떻게 사용자가 상품을 추가하게끔 할지 다른 사람은 그 리스트를 어떤 단계에서 어떻게 볼 수 있게 할지(how) 등 사용자 경험을 잘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왜 '위시리스트'라는 기능이 새로 필요한가? 상대방의 취향을 파악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 왜 '위시리스트'인가? 사용자 입장에서는, 내가 왜 이 새로운 기능을 써야 하는가?(why) 등의 질문이 선행되어야만 사용자도 원하고 비즈니스에도 도움이 되는 제품을 설계할 수 있는 것이다.


2021년 4월 기준으로, 쿠팡의 여러 PO 채용공고 중 하나만 봐도 why를 묻는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Key Responsibilities:   

특정 비즈니스 기능의 프로덕트 비전, 전략, 로드맵 및 KPI 담당

프로덕트 요구사항 작성, 유스케이스 정의, 성공 지표 설정, A/B 테스트 실행 및 고객 채택 확대를 포함하여 시작부터 런칭까지 전체 프로덕트 라이프 사이클을 리드

엔드 투 엔드 고객/판매자 경험에서 마찰 지점을 제거하여 수익 창출 기회 파악

고객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이해관계자에게 고객의 소리 전달

UX 디자이너, 개발자, 고객 지원 및 비즈니스 이해관계자와 굳건한 파트너십을 구축하여 비즈니스 성장을 지원


이 많은 책임들 중에서 "프로덕트 요구사항 작성, 유스케이스 정의" 정도가 내가 생각했던 "화면 기획자" 역할에 가깝다. 하지만 "특정 비즈니스 기능의 프로덕트 비전, 전략, 로드맵"을 그리는 일이나 "수익 창출 기회를 파악"하는 일은 why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구글에 올라온 프로덕트 매니저(프로덕트 '오너'와 다른 용어지만, 개념상으로 비슷하다)의 채용공고는 더 심하다(?)  

Understand markets, competition, and user requirements in depth.

Launch new products and features, test their performance, and iterate quickly.

Work collaboratively with engineering, marketing, legal, UX, and other teams on cutting edge technologies.

Develop solutions to problems by collaborating as needed across regions, product areas, and functions.


어떤 기능에 대한 구체적인 기획을 한다는 내용은 적혀있지 않다. "시장과 경쟁상황을 이해"하고 "새로운 제품을 런칭한 후 성과를 측정한 다음, 그 과정을 반복한다"는 다소 광범위한 역할로 설명되어 있다.


결국 what과 how를 넘어서 why를 고민한다는 것은, product delivery를 넘어 product discovery에 많은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즉, 제품을 만들어서 사용자에게 잘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품을 만들기 전에 사용자의 니즈를 '발견'하고 그 니즈를 해결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발견'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하지만 why를 고민하는 product discovery 과정을 거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과정을 통해 알게 된 것을 정리해서 팀원들에게 잘 공유하고 개발이 시작된 다음에도 why를 끊임없이 상기하며 그것을 토대로 여러 의사결정을 내리는 일도 정말 중요하다. 특히 개발이 시작되면 이전에 미처 고려하지 못한 기획 사항들에 대해 논의하게 되고, 이 때 기획 A안과 기획 B안만 놓고 비교해서 의사결정을 내리게 될 때가 많다. 여기서 PO의 역할은 "왜 애초에 A와 B 관련된 기획적인 요소를 넣게 되었나?"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팀이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중심을 잡는 것이다.


Why를 묻는 훈련은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개발이 한창 진행중일 때면, 너무 사소한 기획 사항에 대해 고민하고 있거나 일정에 맞춰서 출시하는 것에만 매몰되어있는 자신을 종종 발견한다. 하지만 앞으로 여러 경험을 거치며 why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반복해 나간다면, 사람들이 정말 만족하고 유용하게 사용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에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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