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의 이야기(1) - 시드(진로탐색)
20살까지 내 목적은 오로지 명문대에 입학하는 것이었다. 어떤 학과에 지원할지 선택할 때에도 '문과 계열'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내 적성이나 관심보다는 '합격할 수 있는 학과'가 어디일지 고민했다.
그렇게 원하는 대학에 붙었지만 특별히 하고 싶은게 없었다. 아직 전공을 정해야 할 시기가 아니기는 했지만 어떤 전공 수업을 들어도 재미를 느끼기가 어려웠다. 학점 수료에 필요한 전공탐색 강의들보다는 그 사이 사이의 음미체 교양 강의들을 더 신나게 들었다. 첫 여름방학에는 현지 언어 및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학교 프로그램을 신청해 한 달 동안 중국 베이징에서 살았다. 2학기에는 유엔 회의를 주제로 한 학술연극 동아리를 했다. 전공이나 학점보다 교양 수업과 동아리 활동을 더 열심히 챙기는 '딴짓'의 시작이었다.
1학년 겨울방학에는 '인액터스'라는 경영대 동아리를 들어갔다. 동아리를 모집하는 홍보 포스터에는 "비즈니스를 통해 세상을 바꾼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 말이 당시에는 멋있어보였던 것 같다. 게다가 아무 비즈니스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일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동아리 안에서도 여러 가지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나는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일하는 매장의 비즈니스를 성장시키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나를 포함한 프로젝트 팀원들이 다같이 했던 일은 그 매장을 홍보하고 운영 시스템을 만들고 매출을 올릴 이벤트를 구상하고 각종 소상공인 지원 사업에서 지원금을 받아오는 등, 안마하는 것을 뺀 거의 모든 영역이었다. 동아리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매장 인근 주민들에게 개장 소식을 알리기 위해 눈이 많이 내린 언덕길을 힘들게 올라가 아파트 단지 우편함에 전단지를 하나하나 꽂아넣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밖에도 어떤 지역 행사가 있으면 안마 시연회를 진행해서 사람들이 서비스를 체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거나, 기업들을 대상으로 방문안마 서비스 영업을 해보거나, 네이버 키워드 광고와 블로그 체험단을 운영하는 등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해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해보았던 것 같다.
그렇게 막 오픈한 매장을 조금씩 알리고 서비스 운영을 안정화시켜가면서 고객 명단이 하나둘씩 늘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동아리 팀원 어느 누구도 전문 경영 컨설턴트는 아니었지만 우리의 노력 하나하나가 더해지면서 월 매출이 500만원, 1000만원, 2000만원으로 늘고, 나중에는 4000만원 이상으로 커졌다. 매장이 성공적으로 안착이 되니 다른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의 관심과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매장이 위치하던 사당역에 이어서 새로운 지역에 매장을 하나 더 만드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1년 간의 동아리 생활은 '인지도 0'에서 시작한 것을 키워가는 성취감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그 비즈니스가 어떻게 긍정적인 사회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 체감하게 된 시간이었다.
이렇게 보람찬 동아리 생활을 하고 나서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큰 확신을 얻고 창업을 결심했다..고 쓰면 자연스러웠겠지만, 그 이후 로스쿨과 대기업을 준비해보면서 나에게 맞는 진로를 찾기 위해 오랫동안 방황했다. 당시에 창업을 하거나 스타트업에 다니는 사람들이 주변에 한두 명 있었지만, 그들이 있는 곳은 나와는 거리가 먼 세계라고 생각했다. 진취적이고 용감한 스타트업 사람들과 달리 나는 스스로를 위험회피적인 성향이라고 평가했고, 그렇기에 "안정적"이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로스쿨과 대기업 준비도 결국 안정성을 제외하고는 나에게 큰 원동력을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영대 동아리에서 작은 비즈니스를 일구며 성취감을 얻었던 경험을 돌아보며, 기업 생태계와 성공하는 비즈니스들의 패턴을 공부해보는 것이 보람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경영대학원에 진학했다. 좋은 학위를 가지고 교수가 될 수 있다면 "안정적"이고 "명예로운" 직업을 가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곧 연구도 나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경영학의 여러 분야에 대한 개괄적인 논문들을 읽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논문을 읽을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채로 대학원에 입학한 것이 아이러니였다. 현상을 분석하는 어떤 연구자의 프레임워크든 실험을 통한 연구 결과이든 나에게 와닿지 않았고 논문 속 단어들은 공중에 붕붕 떠다녔다. 예비 대학원생들이 보통 미리 익히고 들어오는 통계 프로그램도 사용할 줄 몰라 괴로워하며 과제를 하곤 했다.
멋진 명함을 쫓던 시절이었다.
결국 "있어보이는 명함"은 손에 넣지 못했다. 로스쿨, 대기업, 대학원이라는 여러 개의 문을 두드려보았지만 어느 하나의 길에도 정착하지 못했으니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막막함과 우울함이 찾아왔다. 대학교에 입학한 이래 가장 어깨가 무거웠던 시기가 아닐까 싶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일관성 없이 여러 시도들을 해보고 나에게 맞지 않다고 깨달은 이유는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 '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관심이 가는 것,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찾고 고민하기보다 남의 눈에 좋아보이는 것을 우선시했다. 로스쿨 시험을 공부하든 대기업을 준비하든, 그 길을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이었다면 자연스럽게 그 직업이나 기업, 다양한 직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찾아봤을 터였다. 그리고 내가 정말 그 직업이나 업무를 원하는지는 면접에서 드러날 뿐만 아니라, 애초에 그 진로를 준비할 때 가장 큰 원동력으로 작용해줄 수 있는 요소였다.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