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주제 글쓰기
신발장은 거의 비어 있다. 현관에는 운동화 두 켤레와 슬리퍼 한 켤레가 놓여 있다. 두 개의 운동화 전부 오래 신어 헤졌다. 수시로 풀리는 신발 끈을 그대로 두고 덜렁덜렁 걸어 다니기 일쑤라 원래는 하얬던 끈이 거무튀튀해졌다.
나는 외출할 때 옷차림이나 머리, 얼굴에는 신경을 쓴다. 그런데 이상하게 신발은 신던 것만 신는다. 누군가 ‘신발 하나 사줄까?’하고 물을 정도로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계속 그 신발만 신는다. 기어코 구멍이 난 걸 본 뒤에야 버린 신발도 있다.
신발에 돈 쓰기를 유난히 아끼는 것도 아니다. 예쁜 신발을 보면 사고 싶고, 가끔은 충동적으로 사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렇게 산 신발은 결국 신발장에 처박히고 원래 신던 신발을 찾게 된다. 큰맘 먹고 새 신발을 신고 나갔다가도 집으로 돌아와 원래 신던 신발로 다시 갈아 신는 경우도 많았다. 거의 비어 있는 신발장 안에는 새것이나 다름없는 신발이 곱게 놓여 있다.
곰곰이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간단한 답이 나왔다. 새 신발의 길들지 않은 그 느낌이 싫어서다. 이미 익숙해져서 전혀 불편하지 않은 신발을 두고 또 뒤꿈치에 상처나 낼 새 신발을 신고 싶지 않아서. 새것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견디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다.
비단 신발에만 그런 건 아니다. 나는 뭔가에 새로이 적응하는 과정 자체를 몹시 불편하게 여긴다. 적응을 금방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런 걸까?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보다 익숙한 것을 반복하고 싶다. 새로운 일이 익숙해질 때까지의 시간은 새 신발이 편안해질 때까지의 불편함과 비슷하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그만두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찾아오는 첫 번째 고비는 보통 사흘째에 온다고 한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이 그 첫 번째 고비를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진다. 나 또한 그렇다. 운동, 공부, 새로운 취미 생활. 하고 싶은 건 수두룩하지만 며칠도 반복하지 못하고 금방 치워버리고 만다. 길들이는 과정이 귀찮아서 신발장에 처박아버린 새 신발처럼.
반대로 생각하면, 결국 그 순간이 지나갈 때까지만 견디면 된다는 것이다. 목적지까지 가려면 신발을 먼저 길들여야 한다. 한 번 길들인 신발은 신고 달리기를 해도 무리가 없다.
오늘은 3년 전에 산 새하얀 신발을 신고 외출해 봐야겠다. 불편하다고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신다 보면 분명 익숙해질 테니 이번에는 좀 참아봐도 좋을 것 같다. 이 신발을 신고 달릴 수 있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