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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우소 Dec 15. 2023

전환점

가까운 미래

나는 수 년 전 직업을 바꿨다. 당시에는 아이들이 태어나면 산모들에게 양육방법을 안내하고 회복을 위한 건강관리를 돕는 산후관리사였다. 하지만 휴머노이드의 지적 능력과 생산성이 인간을 넘어선 뒤부터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순수한 연구나 인공장기 또는 신약 실험을 위한 목적으로 수정된 인간을 제외하고는 그들에게 자연상태로 임신이 허락되는 경우는 차츰 줄어들었다.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휴머노이드의 개체 수처럼 인간도 조절되어야 할 필요성에 모두 공감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가 산후관리사로서 할 수 있는 일도 사라져갔다. 자연스럽게 기존의 돌봄 기술을 발휘해 늙어가는 인간들을 상대하는 요양보호사가 되었다.


기후 변화, 농작물 수확량 변화, 종의 개체 수 변화, 비상 재난 상황 등은 수집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예측되고 그에 따른 시나리오를 일찌감치 갖추게 된다. 길거리에서 가끔 발견되는 떠돌이 인간들과 그의 자식들은 강제 중성화 수술을 받고 임시보호처로 넘겨져 입양을 기다리거나 건강상태가 망가진 경우 안락사를 당했다. 모든 동네에는 정기적으로 순찰을 돌며 떠돌이 동물들을 탐지하는 경비가 있다.


희동이가 나를 만난 게 다행인건 분명하다. 하지만 희동이는 자신이 나를 선택하고 권한을 하사한 것이라 굳게 믿는다. 게으르고 건강관리에 관심은 없지만 폼나게 오래 살고 싶다는 열망이 있는 모순으로 가득한 다혈질 인간 희동이는 잘생겼다. 잘생겼다는걸 누구보다 잘 알고 유용하게 써먹는다. 예쁜 여자와 실없는 농담을 좋아하고, 쉽게 다가가 마음을 얻는 재주가 있다. 능글능글 말을 잘하고 약간의 허풍과 허세가 있으며, 이치에 맞게 생각하고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말하고 행동하는 걸 재미없고 위선적인 인조인간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여지껏 따로 의지할 데는 못 구했는지 오늘도 내 곁에 붙어서 그럭저럭 남은 생을 이어가는 중이다.


서로의 집을 심심찮게 드나든 이후로 요즘은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앓는 소리를 한다. 사실 큰 꿈이 있는데, 이런 저런 것도 없어 여건이 안 된다부터 시작해 주변에서 투자를 받는 계획을 세우는가 하면 귀기울여 들어보니 언제부터였는지 하고싶은 것도 많다. 자꾸 사업 타령을 하는 것이다. 그것마저도 자기가 할 생각은 없다. 나를 다그치며 당구장 이웃처럼 가게를 하나 차리자고 한다.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아이템을 정해보라고,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냐고,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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