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없는 동화
오랜 기간에 걸쳐 영이의 뱃속에 차곡차곡 쌓인 오물은 점점 더 위쪽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공간이 얼마 없었다. 마주 앉은 상대방의 조금 거슬리는 옅은 체취에도 영이는 속이 메슥거리며 분수토를 쏟아냈다. 그 때마다 시한폭탄이 터진 현장처럼 사방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물론 상대방은 영이의 이런 사정을 몰랐으며 앞으로도 알 길이 없을 것이다. 영이는 문득 평생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아빠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의 모습과 많이 닮은 자신을 발견했다.
영이는 반복되는 구토가 두려워졌다. 자신에게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냄새를 떠올리며 기록하기 시작했다. 정수리 냄새, 발 냄새, 땀 냄새, 살 냄새, 입 냄새, 샴푸 냄새, 향수 냄새…모든 건 체취와 관련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로부터 풍기는지에 따라 같은 종류의 냄새도 다르게 느껴졌다.
영이는 소지품을 챙겨 한동안 발길이 뜸했던 학교 근처의 단골 분식집으로 갔다. 주인 아주머니는 영이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학생 하도 안 보여서 그 사이 졸업한 줄 알았지! 아직 다니나봐? 오늘은 혼자 왔어? 김떡순 한 접시 라면사리 추가! 오랜만에 와서 반갑다고 사리 서비스야.“
영이는 즐겁게 맞아주는 아주머니에게 살짝 웃어보이고는 사각철판에서 떡볶이가 데워지는 동안 앞에 놓인 티슈통의 휴지를 한 장씩 뽑아 돌돌 말아 아무렇지 않게 잘근잘근 씹어먹었다. 녹말 이쑤시개도 한 개비씩 또각또각 부숴먹었다.
아주머니는 이런 영이의 모습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니 학생, 돌도 씹어먹을 나이라더니 맞잖아! 배가 많이 고팠나봐. 조금만 기다리지. 주문한 거 곧 나올거야.“하고 말을 붙였다. 영이의 뱃속이 또 다시 꿈틀거렸다.
“네,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져요. 아무거나 맛도 모르고 먹어요.” 이제껏 여길 드나들면서 아주머니랑 눈 한 번 맞춰본 적도,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더더욱 없었던 영이가 입을 떼자 기다렸다는 듯이 분수토가 쏟아졌다. 방금 삼킨 휴지와 이쑤시개 조각, 빨대, 꽁초, 분필, 지우갯가루, 씹다 만 손톱, 머리카락 등이 학교 아이들의 이름과 별별 이야기가 빼곡히 새겨진 벽면을 뒤덮고 테이블 위로 뚝뚝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