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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퇴로는 없다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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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해우소 Sep 06. 2024

책을 읽다

나 사용설명서

오늘부터 ’가장 편안한 나만의 지점‘을 찾기 위한 단서들을 꾸준히 기록해보려 한다. 삶의 템포, 박자와 리듬을 알아보려는 노력이다. 하루 대부분이 ‘습관‘으로 이뤄져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그냥 하는 것들, 그 중 첫 번째로 ’독서습관‘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나는 책을 닥치는대로 읽는다. 식습관으로 치면 편식 없이 잘 먹는다. 신문이나 잡지를 보다가 신간소개가 흥미로우면 하나씩 찾아볼 때도 있고 마음에 드는 작가들을 기억해뒀다가 대표작을 찾아보는 식이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대부분의 경우 바로 검색대로 향하기보다는 일단 둘러본다. 그 날의 기분에 따라 마음에 드는 장르를 먼저 고르는데, 이를테면 어둡고 다운된 기분에는 가벼운 에세이나 단편소설, 집중이 잘 되는 맑은 날에는 인문철학이나 자연과학 등 교양서적을 뒤적거리게 된다.

먼저 표지부터 스캔한다. 낯선 인파 속에서 시선을 끄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눈길을 사로잡는 커버의 책을 우선 집어든다. 첫인상에서 외모는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품고있어도 껍데기가 영 부실하면 손이 잘 안가는 것도 사실이다. 열어본 뒤에야 그 진가를 알게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어쨌든 처음은 대부분 그렇다.

그 다음엔 큰 의무감 없이 누군가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본다는 마음으로 몇 페이지를 가볍게 훑어본다. 실제 만남과 독서의 차이가 있다면, 실제 만남에서는 내가 아무리 관심 없는 얘기일지라도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해서 끝까지 들어줘야할 것 같은 반면, 독서에서 나는 언제든지 원할 때 책을 탁 내려놓을 수 있다. 그건 아주 편하지만, 이런 식으로 자꾸 효율에 치중하다보니 실제 대인관계에서 인내심이 좀 떨어지는 면도 생기는 것 같다.

아, 작가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있었고 표지까지 좋은데다가 책의 내용마저 마음에 쏙 들면 그 때부터는 그의 다른 작품들까지 파고들기 시작한다. 반대로 어떤 책들은 서두가 지루해서 실망할 때도 있다. 그럴 땐 과감하게 눈감고 아무데나 중간쯤을 펼친다. 그럼 대개 그의 본론이나 클라이맥스가 나온다. 어? 너무 다르잖아! 그러고나면 이야기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앞이나 뒷페이지까지 살펴볼 인내심이 생긴다.

그렇게 한 권을 다 읽고나면 한결 그와 가까워진 기분이다. 다음에 또 만나고싶은 사람도 있고, 돌아서면 금방 잊혀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마찬가지로 새로운 만남과 그의 생각을 알아가는 과정은 즐겁다. 비록 그가 나와 다를지라도,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또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하며 책을 읽다보면 나의 시야와 마음 그릇이 한층 넓어지는 기분이 든다.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책은 움베르토 에코의 유작이 된 에세이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 하는 방법’과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방법’, 그리고 그의 유일한 동화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이야기’이다. 에코의 에세이 같은 경우, 국내 번역본의 제목이 묘하게 공감되어 ‘그래, 아무래도 내가 모자라거나 정신 나갔다고 생각하는 것보단 사람들이 다 멍청하고 세상이 미쳤다고 믿는 쪽이 속 편하지’하며 선택했지만 막상 도입부 몇 장은 생각보다 난해하고 지루했다. 번역의 문제였을까? 어쨋든 처음과 달리, 페이지를 넘길수록 작가 특유의 세상을 비틀어보는 풍자적 시선과 블랙 유머가 친근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표면적으로는 그가 사람들이 모두 천하의 바보고 우리가 사는 사회가 가망없이 미쳐돌아간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 중 완벽한 사람이란 없으니 이왕이면 서로에게 친절하고 더 사랑하고 많이 만나고 웃으면 좋겠다, 세상에 대한 일말의 기대와 희망을 갖고 살아가고싶다는 얘기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