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용설명서
아이들의 엄마가 되고 우리 몸에 들어갈 음식을 직접 만드는 것이 일상이 되니 비로소 음식의 중요성에 대해 실감하고 있다.
한 주에 한 번, 많으면 서너 번 시장에 간다. 주는 밥을 받아먹던 입장에선 몰랐지만 밥상 차리는 사람이 되어 매일 먹을 메뉴를 고민하다보면 사람은 도대체 왜 하루에 세 번이나 먹어야 살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질리지 않게 끼니마다 새로운 걸 내놓는 건 누군가에겐 꽤 큰 도전이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활동 중 하나가 맛있는 걸 먹는거다. 어쩌면 가장? 아니, 아마도 사는 이유? 이걸 잘 만들면 하루 세 번 행복해질 기회가 생기는거다. 음식이야말로 기분 안 좋을 때 제일 잘 듣는 치료제 아닌가? 울고불고 엄마가 미워서 쓰레기통에 버릴거라는 우리집 막내도 밥이 맛있으면 엄지를 번쩍 치켜들고 싱긋 웃으며 ’엄마가 맛있는 걸 해줘서 정말 최고야, 행복해!‘라고 외치니 말이다. 내가 식단을 부지런히 챙기면 아이들 손톱이 튼튼하고 피부가 매끈하고 참을성과 면역력이 생겨 집안이 조용하고 아픈 데가 없다.
그리고 시장으로의 외출은 기분전환에 늘 도움이 된다. 싱싱하고 알록달록한 재료들, 신제품들, 타임세일, 오고가는 사람들까지 구경거리가 많다. 자주 들락날락하다보면 제철인 식재료도 알게 되고, 제철이면 싱싱하고 값도 싸니 식재료만큼 고마운 게 없다. 다른 건 좋은게 대부분 값이 비싸니까.
나는 약의 도움을 받아 심신안정을 꾀하려고 부단히 시도하다가 어느 순간 잘 맞지 않는 약에 억지로 나를 맞춰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본적인 상황개선을 위해 심리상담을 받아야할까 망설이던 중 같은 비용으로 건강한 먹거리를 사서 맛있는 음식을 해먹겠다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아직까진 만족스럽다.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식재료는 늘 비슷한데, 고맙게도 소셜네트워크에서 숨겨온 실력을 아낌없이 뽐내는 재야의 고수들 덕분에 식상한 반찬만 해대던 나도 새로운 메뉴를 자주 발견하고 시도해 볼 수 있어 좋다. 남편의 채식선언으로 덩달아 채식의 길을 걷고 있는 요즘이다. 확실히 몸과 마음이 가볍고 편안하게 느껴지지만 우리집 요리 담당으로서 나의 운신의 폭은 더욱 좁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한된 조건에서 최대한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불평 말고 생각과 태도를 바꾸는 것! 내가 찾은 행복의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