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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우소 Dec 01. 2023

눈사람을 발로 차면

퇴로는 없다

얼마 전 첫 눈이 내렸다. 우리 가족에게 12월은 설렘과 소망이 가득한 달이다. 일단 우리 부부의 생일이 있고 큰 아이가 기다리는 크리스마스가 있다.


부모가 되고 보니 훌륭한 연기자가 되어야 하는 순간이 많다는 걸 느낀다. 우선 아무리 피곤하고 살기 싫고 우울한 어떤 날도 아이들에게 내 감정을 옮기지 않으려면 그렇다. 표정관리 잘 하고 밝고 따뜻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아이는 아직 산타가 진짜 있다고 믿는다. 게다가 얼마 전엔 첫 니가 몇 개 빠졌는데 그걸 가져가는 이빨요정도 있다고 알고 있다. 아이들의 이런 세계관을 지켜주기 위해 같이 즐기려는 자세를 갖고 소소한 이벤트를 부지런히 챙기는 부모들을 보면 작은 아이의 믿음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느껴지고, 어린 시절 자신의 소중한 기억들을 모아 잘 대물림하고 있는 거겠지 싶어 보기가 좋다.


나는 지난 해 아이로부터 친구의 첫 니가 빠졌고 친구가 잠든 사이에 이빨요정이 다녀가며 베개 밑에 동전을 두고 갔다는 이야기를 듣던 중 무심코 실수로 “엄마가 갖다놓으셨겠지”라고 말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순간 나를 ‘어떻게 저런…?’ 하며 바라보던 아이의 흔들리는 눈빛이 당황스러워서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런 의미에서 굳센 믿음을 가진 아이들 앞에서 산타가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거나 눈사람을 부수는 사람들의 행동은 법으로 처벌받을 죄는 아니지만 신성모독이라고나 할까? 그들이 금기를 깨기 위해 태어난 예술가인지는 몰라도 굳이 가만있는 상대방 안색을 살펴가며 나는 솔직한 사람이다 표현의 자유다 이래가면서 누군가의 죄없는 믿음을 산산히 부서뜨릴 필요가 있는가 말이다.


예를 들면 나는 동성애에 이의가 없지만 그들 중 누군가 자신들을 인정하라고 퍼레이드를 하며 요상한 모양의 쿠키를 나눠주는 것이나 보육교사가 반동성애 교육을 한다고 아이들에게 부적절한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나 나는 개가 반려동물이라 믿지만 굳이 오랫동안 음지에 숨어서 닭이나 소처럼 생각하고 먹어온 사람들을 찾아가 개를 먹지 말라고 자신들의 믿음을 강제하는 것이나, 모두 바바리맨처럼 TPO에 어긋난 행동으로 보인다.


나는 성인이고 누군가 눈사람을 내 눈 앞에서 발로 차거나 산타를 믿지 않아야 구원 받는다고 전단지를 돌려도 아무렇지 않지만 렛잇고를 부르며 올라프같은 눈사람을 만들고 좋아하는 아이들 앞에서 당신이 그러는 모습을 본다면 내 발에 차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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