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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우소 Dec 10. 2023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

영화와 함께

우리는 낯선 이들에게 친절한가? 그리고 도대체 왜 그래야만 하나?


나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일상에 환기가 필요할 때 여행을 생각한다. 영화의 엄마는 어느날 갑자기 잠에서 깨자마자 트렁크에 짐을 싼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남편에게 억척스럽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보고 떠나야겠다 생각했다고, 자신은 인간이 싫다고, 아이들과 당신도 좋아할거라며 한적한 교외에 즉흥적으로 예약한 숙소로 향한다. 그 와중에 그들은 함께이면서 또 따로다. 아빠는 차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고 엄마는 핸드폰으로 통화중, 딸과 아들은 태블릿으로 게임, 영상 시청중이다. 국경 너머 우리 모습과 닮았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집 주인이라는 부녀가 난데없이 찾아와 자세한 사정 설명도 없이 여기서 같이 지내야겠다고 한다. 멀끔한 모습으로 고급차를 끌고온 흑인들이다. 낯선 환경에서 이방인들과 어쩔 수 없이 단체생활을 하게되자 집을 빌린 백인 엄마는 극도로 예민해져 경계태세가 된다. 너무나 정당하지만 상처내기를 끊임없이 반복하게 만드는 우리 안의 편견, 의심, 적대감을 한 꺼풀 알아차리게 해주는 장면이다.


평화로운 숙소 주변으로는 휴가기간 내내 온갖 사고가 터진다. 여유로운 일광욕을 즐기던 휴식처인 해변가에 거대한 유조선이 방향을 잃고 들어서고, 비행기들이 추락해 시체가 널부러지고, 정체불명의 드론이 날아다니며 미국에게 죽음을! 이라는 메세지를 담은 전단지를 독가스처럼 살포한다. 그 전단지는 어느 곳에서는 이슬람어로, 또 다른 곳에서는 중국어나 한국어로 퍼뜨려지고 있다. 무슨 일인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르지만 뭔가가 일어나고 있는데, 통신이 끊겨 상황파악이 어렵자 무력감을 느낀다. 엄마의 핸드폰에 잠시 이것이 해커들의 공격이라는 뉴스속보 메세지가 떴다가 사라지지만, 진위를 확인하기 어렵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러 나섰다가 고속도로에서 자신들 쪽으로 달려오는 차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드는 남편에게 아내는 그것이 무인 자율주행 전기차라는 것을 알고 다급히 피하도록 한다. 통신망 공격으로 해킹된 수 백 대의 자동차들이 고속도로에 끝없이 이중삼중 추돌되어 망가진 채로 늘어선 모습은 새로운 종류의 악몽 같았다.


수십 년 된 시트콤 프렌즈를 즐겨보고, 아무도 자신의 얘기에 귀기울이지 않는다고 한탄하고, 숙소 앞에서 야생동물 떼를 자주 마주치던 백인 부부의 막내딸은 갑자기 신에게 기도만 하다 죽을 순 없다며 직접 살 길을 찾아야한다는 드라마 속 대사를 엄마에게 수수께끼처럼 읊더니 다음 날 홀연히 사라진다.


그러던 와중 부부의 아들이 갑자기 이유도 모르고 시름시름 앓기 시작해 백인아빠와 흑인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생존전문가라는 이웃을 찾아간다. 자신의 딸이 아빠에게 가지말라고, 함께 있자고 애원하는데도 흑인아빠는 다른 아이를 구할 방법을 찾기 위해 한 시간 뒤에 돌아오겠다며 백인가족과 함께 떠난다. 그는 아마도 살아남기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 떠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믿었던 이웃도 경계태세로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힘없이 도움을 구하는 이들에게 총구를 겨눈다. 그 모습은 같은 시각 숙소 앞으로 야생동물들이 찾아와 자신들을 에워싸자 두려워하는 백인엄마와 흑인 딸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그때쯤 흑인 딸이 아빠와 만나기로 약속한 한 시간이 지나 알람이 울린다. 그러나 아빠는 돌아오지 않는다.


마침내 이웃과 얼마간의 대치가 끝나고 비상약을 얻으며 그로부터 또 다른 이웃의 집에 방공호가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된다. 흑인아빠는 방공호로 향할 고민을 하며 백인가족에게 당신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고 묻는다.


그 시간 서로를 가장 경계해왔던 백인엄마와 흑인 딸은 함께 힘을 합쳐 야생동물들의 위협을 막아낸 뒤 사라진 막내의 자전거 바퀴자국을 따라가다가 못 보던 집을 발견한다. 막내는 이미 그 곳에서 좋아하는 불량식품을 다 꺼내먹으며 잠시나마 위안을 얻고, 방공호에 들어앉아 서가에 빽빽히 꽂혀있던 추억의 DVD 중 궁금했던 시트콤 프렌즈의 에피소드를 찾아낸다.


막내는 프렌즈에 왜 그렇게 진심이었을까? 프렌즈는 친구들과 이웃들이 서로 믿고 함께 살던, 실제로 존재했었는지 아닌지 모를 이상적인 시대에 대한 노스탤지어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밀폐된 공간, 한정된 자원으로 살아갈 방공호는 우리가 사는 지구나 새로 개척하게 될 또 다른 행성의 은유일까.


막이 내린 뒷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다.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은 방공호에서 다시 만날까? 믿음이 없는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나를 둘러싼 모든 존재를 의심하고 대치하다가 혼자라도 살아있는 것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될 수 있을까?


재작년까지 한국이라는 나라가 저출산으로 없어질 지 모른다는 고민을 해본 적이 없던 엄마로서 지구종말이라는 주제도 더 이상 터무니없는 망상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영화에서처럼 밝혀지지 않은 악의 축 때문에 벌어지게 될 재난이라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위협으로 간주하고 도구화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는 인간이 자초하려는 결말일 것이다.


인간이 힘 없고 말 없는 동물과 자연에게 하는 짓은 우리가 손가락질해 온 나치나 중공군, 자위대, 식민지 시대 제국주의와 다를 바 없다. 모두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은 아마 정체불명의 강한 놈들의 공격을 받아 쓰러지기 전에 우리가 오랫동안 함부로 대해온 익숙한 약한 놈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해 게워낸 토사물에 쓸려내려갈 듯 하다.


최고로 따뜻한 겨울이다. 쓰레기산이 우주에서도 보이고 동물들은 사라진다. 기도를 하며 신의 구원을 기다릴 시간에 아이들과 분리수거라도 하는 게 좋겠다.


©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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