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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이 Mar 21. 2023

악하고 게으른 직원?

상시평가를 해야 할 이유


종교와 상관없이 가끔 기독교 성경을 읽는데,

재미난 비유가 있어 소개합니다.



어떤 주인이 외국으로 길을 떠나게 됐습니다.

하인 3명을 불러 그들의 능력에 따라 돈을 맡겼고, "오랜 기간 후에" 돌아와서 어떻게 되었는지 보고를 받았습니다.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인1: 원금 5달란트 → 수익 +5달란트

하인2: 원금 2달란트 → 수익 +2달란트

하인3: 원금 1달란트 → 땅에 묻어두고 1달란트 그대로 돌려줌


하인1과 2가 주인에게 자랑스럽게 수익률 100%의 업적을 보고합니다. 주인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며 더 많은 것을 맡기겠노라 합니다.


이윽고 하인3의 차례가 되자, 그는 놀랍게도 이렇게 말을 합니다.


"저는 당신이 완고한 사람이란 걸 알기 때문에, 두려워서 땅에 잘 감춰 뒀었습니다. 자 보세요, 당신 것을 그대로 받으셨으니 된 것 아닌가요?"


이 보고를 들은 주인이 말합니다.


"아니, 그럴 거면

차라리 은행에 맡겨서 이자라도 받지 그랬냐,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마태복음 25:14 / 재편집)



처음 봤을 때 저는 너무 쉬운 비유라고 생각했습니다.

첫번째나 두번째 하인은 롤모델이고, 세번째 하인은 피해야 할 모습이라고.

심지어, "세번째 하인 같은 사람이 현실에 있기는 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본래, 롤모델은 희소하고 피해야 할 모습은 주변에 더 많아야 교훈이라는 게 성립하기 마련인데, 세번째 하인 같은 경우는 현실에 거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왜 성경에 굳이 이런 효과 없는 비유가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 C등급 받는 게 퇴사보다 낫다


하지만 직장인을 떠올려보니 그제야 이 비유가 심오함을 느낍니다. 임원이든 직원이든 오너가 아닌 이상 세번째 하인과 같은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너가 아닌 이상, 어떤 임직원도 첫번째나 두번째 하인처럼 Risk를 fully taking 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오너한테 "너 아무것도 안 하고 뭐 했냐"라고 혼날지언정 "사고 치지 않고 기다리는 태도"가 더 안전하다는 것을 우리는 선례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호기롭게 나섰다가 잘린 임원이라든가)

즉, 세번째 하인이야말로 고용인-피고용인 관계 속, 보편타당한 인간 군상입니다. 세번째 하인은 옛날 동화속에 나오는, 교훈을 주기 위해 가공해낸 우둔한 캐릭터가 아니라 '피고용인'의 입장에서 보통의 인간이 취하는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 평가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이 우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세번째 하인의 대답입니다.

“당신이 완악한 주인임을 알기에 내 그리 했다.”

상당히 도발적입니다. 이건 이미 "엿 먹어라"의 마음으로 돈을 묻어둔 것으로 보입니다.

즉, 이 하인은 처음부터 다른 종들과 받은 돈을 비교하고 빈정 상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인 말대로 은행에라도 맡겼으면 이자라도 벌었을 테니까요. 그걸 모를 만큼 멍청했다면 "이 악하고 게으른 종"이 아니라 "이 어리석은 종"이라고 했을 겁니다. 또는 아예 안 맡겼을 수도 있고요.

“주인이 종들에게 능력대로 맡겼다”는 내용을 생각하면, 이 종은 이미 좋은 성과평가를 받는 종은 아니었던 것이고, 그렇기에 비교 아닌 비교를 당한 상황에 화가 나서 돈을 땅에 묻은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어쩌면 안 좋은 선례들을 봐 왔을지도 모릅니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과가 안 좋았을 때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비자발적으로 퇴사당한 임원들의 선례를요. '주인이 완악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하인의 해석 문제이므로 그 팩트를 알 수는 없습니다만, 어쩌면 이 조직에는 오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퍼져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렇게 보니까,
종교적인 교훈과는 좀 달라졌겠지만,

오너 경영 체제에 빗대어 봤을 때 세번째 하인이 사실 억울할 법한 이야기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미 위험을 감수한 배분이었다


이번에는 오너 입장을 헤아려 보겠습니다.

오너는 이미 Risk taking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첫번째 하인이 평소에 실적이 좋은 인재이기는 해도, 내가 주는 “내 돈” 5달란트를 말아먹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하인에게는 평소에 성과가 안 좋았기 때문에 1달란트를 주기는 하지만 "내 돈"을 잃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이 위험을 감수한 것입니다.

즉, 오너 입장에서는 첫번째 하인이나 세번째 하인이나 똑같은 하인입니다. 역량부족이든 횡령이든, “타인의 자본을 운용함에 따라 발생 가능한 위험 요소"를 가진 하인.

오너 입장에서는 "5달란트나 1달란트나 어차피 내 돈을 잃을 걸 감수하고 맡기는데 그걸 하인이 왜 따져 물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 상시평가가 필요한 이유


오너나 경영진이 신뢰하에 목표를 배정한 것이라고, 모든 구성원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C등급 받는 게 퇴사보다 낫다

평가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이런 생각이 조직 내 만연할 수도 있습니다.

구성원들이 처음부터 부정적인 성향이라서가 아니라, 오너가 외국으로 떠나 "오랜 기간 후"에 돌아와 1회성 평가를 하면 조직에 기대하지 않은 정서가 싹틀 수도 있는 법입니다.


만약, 분기든 매월이든 조직장이 구성원과 함께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어떨까요?


C등급 받더라도 가늘고 길게 가려던 직원은 적절한 긴장감을 갖게 될 겁니다.

작은 목표 배정에 삐쳐서 의도적으로 0% 수익을 내려고 마음먹었던 직원은 점차 더 많은 목표를 배정받으며 승승장구했을지도 모릅니다.

조직장은 직원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착하고 충성된 사람들임”을 알게 될지도…?


# 평가는 활용(보상) 시점으로부터 멀찍이


보통 11월에 평가하고 12월에 승진 심사, 1월에 연봉결정을 합니다. 조직장은 11월에 평가를 함에 있어서 승진/연봉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당장 이 구성원들과 내년을 함께 해야 하니까 원활한 정서 관리와 안정적인 조직 운영을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만약 성경 속 세번째 하인과 같이 연간 성과가 0인 사람에게 이런저런 이유로 승진을 해야 한다고 해서 평가를 좋게 주면 어떻게 될까요. 조직장은 구성원들의 신뢰를 잃게 되고 좋은 평가를 받은 직원 본인도 민망해지며, 내년의 생산성은 담보할 수 없게 됩니다. 구성원들에게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가 간접 전달되었으니까요.


승진/연봉 결정 시점과는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연초부터 평가를 적립해 나가는 상시평가.

불과 5년 전만 해도 낯선 평가방식으로 받아들여져 '조직에 피로감만 쌓인다'며 각광받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피드백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기업에 유입되고, 몇 차례 '보상 공정성'이 산업계에 이슈화되면서 이제 상시평가와 같은 평가 공정성 제고 장치가 다양한 형식으로 자리 잡아가는 중입니다.


야심 차게 상시평가를 도입했는데, 자칫 매월 목표나 업무계획을 달성했느냐를 갖고 "쪼아대는", 피하고 싶은 시간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HR부서의 세밀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상시평가의 Naming, 진행 방식, 작성 양식이나 플랫폼, 안내 문구 등 구성 요소 하나하나를 연역적으로 설계해야만, 임직원들의 인식 속에 긍정적인 평가 Frame이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 만약 이랬더라면


[주인이 외국으로 떠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고국 저택에 있는 또다른 하인 한 명이 서신을 보내왔다. “주인님, 제가 3개월마다 하인들의 성과 내용을 서신으로 적어 발송하겠나이다. 반드시! 하실 말씀 있으면 미리미리 적어서 답장을 보내주셔야 합니다. 하실 말씀 없어도 답장 보내주세요. 꼭입니다!”]


처음부터 '악하고 게으른 직원'은 없습니다.

악함과 게으름을 조장하는 평가/보상 기제가 있을 뿐.


이렇게 말씀드리니, 제가 조직 구성원을 회사 제도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지나치게 피동적인 존재로 파악하는 것처럼 보일 것 같습니다.

네, 맞습니다. 집단으로서 우리 개인은 문화와 제도에 종속된다고 생각합니다. 집단 속 개인은 일상 속 개인과는 다른 행동을 취하기 때문에, 회사에는 HR을 전문적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성경 속 우화를 경영의 맥락으로 해석한 것이니, 종교적인 의미로 오해하시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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