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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이 Jun 26. 2023

퇴사라는 살의(殺意)

핵심인재가 퇴사하는 이유

퇴사라는 살의(殺意)


모든 구성원이 중요하지만 특히 핵심인재의 퇴사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 부서의 차장급 정도, 그 부서의 Key job을 수행하는 인물이 어느 날 갑자기 퇴사를 한다면 단기 내에 대체할 수가 없다. 이들의 퇴사 이유는 단순히 돈에 불만족해서나, 상사를 못 견뎌서, 승진을 못해서는 아니다. 직장생활 십수 년을 하다가 한 부서에 정착하여 요직을 맡고 있는 인재라면 그간 어지간한 리더십은 다 겪어보았고, 승진 탈락 정도는 감내할 수 있다.


설령 그것들이 이유라 하더라도, 그리고 그 이유들이 쌓이고 쌓였더라도, 마지막 점화 장치에 불이 붙지 않으면 퇴사는 '결심'에 머무를 뿐 '결행'에 이르지는 못한다.


핵심인재가 퇴사를 '결심'하는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끝내 퇴사를 '결행'하는 만드는 방아쇠는 단 한 가지다.


모멸감.


마음속 마지막 안전장치가 풀리고,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사직서를 내는 결행은 모멸감을 느낄 때 이뤄진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그저 월급이 적다고 퇴사하지 않는다.

"월급 더 주는 회사로 갈 수는 있어?"

이런 비아냥대는 말에 퇴사한다.


상사의 무능, 악랄함, 마이크로매니징으로 퇴사하지 않는다.

"응? 퇴사하고 싶다고? 아, 그 퇴사 2개월만 미루면 안 되냐? 아... 쓰읍. 이 프로젝트 끝내야 되는데."

사람을 도구로만 바라보는 태도에 퇴사한다.


부장이나 팀장으로 승진 못했다고 퇴사하지 않는다.

"박 차장, 회사가 팀장 자리를 쉽게 주질 않는구먼. 이참에 아예 전문계약직으로 전환해서 시장가라도 받는 건 어때? 전문 인재인데 능력에 걸맞은 보상을 받아야지."

현상을 왜곡하는 간사함에 퇴사한다.


전문계약직 전환을 권하는 마지막 예는 언뜻 보면 사려 깊은 처사로 보이지만, 이는 가스라이팅에 불과하다. 어느 정도 진심이긴 하겠으나, 그 이면에는 핵심인재로 하여금 '나는 조직장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가 보다'라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어 계약직 전환을 선택하게 하고, 자신의 지배력을 높여 사람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있다.


나의 존재가치가 부정당하거나, 그저 도구적 가치로 격하될 때, 우리는 모멸감을 느낀다. 가설적으로 만든 예시들이지만, '보상' '리더십' '승진' 그 어떤 요소도 핵심인재에게는 퇴사의 결정적 계기가 못 된다. 핵심인재의 퇴사를 결정짓는 요인은 '모멸감'이다. 상사 또는 회사의 프로세스로부터 본인의 존재가치가 격하됐다고 느낄 때, 그간 마음만 먹었던 퇴사의 실행 버튼을 누른다.




자기 존재가 무시당할 때 취하는 극단의 행동은 살인이다.


범죄심리학자들이 말하기를, 살인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인터뷰했을 때 살인의 직접적인 동기를 물어보면 '나를 무시해서'라고 말하는 범죄자가 많다고 한다. 실제 구글 검색창에 앞뒤 맥락 없이 그냥 [무시해서]라는 키워드만 써도 거의 모든 뉴스 검색 내용이 '무시해서 죽였다'는 기사들이다.


현실 사건의 내용은 다룰 수가 없지만, 대신 영화라는 매체를 통하여 '무시당했을 때의 느낌'과 그 '파국'을 대리 경험해볼 수 있다.


영화 [기생충] - 상류층의 파티에서 상류층과 하류층 간 경계선을 명확히 긋는 행동을 보았을 때 하류층 기택의 머릿속 안전장치가 풀리게 된다.


영화 [폭스캐처] -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자 백만장자 존의 행동은 점차 병적으로 바뀌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드라마 [미생] - S대 나온 신입사원 장백기는 허드렛일만 시키는 사수에게 대든다. 사수가 '아직 멀었네'라고 무시하자, 그간 만지작거리기만 했던 이력서를 헤드헌터에게 발송한다.



아닌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무시당했을 때 폭력성을 드러내는 영화 속 주인공들은, '자존감'은 낮기도 하고 높기도 한데, 확실히 '자의식'만큼은 강하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남들과 명확히 분리된 특징적인 개체로 인식하고 있고,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이런 취급을 당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자아가 대중들과 다를 바 없이 도매금으로 취급 당할 때 치욕스럽게 생각한다. 훼손된 자기 가치를 회복하고자 치욕을 준 상대방을 섬멸하려는 폭력성을 드러낸다.




핵심인재의 퇴사 - 자신의 존엄을 무시한 회사를 향해 내지르는 '살의'


회사라는 공간에서 '자의식'은 '자기효능감'과 유사하다. 핵심인재는 자기효능감이 강하다. 자기효능감이란, 주어진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낼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그런데 내가 신뢰하는 나를, 정작 회사는 신뢰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면, 회사에 대한 분노가 치민다. 본인이 그간 쌓아온 공적이 남들과 달리 월등하고, 앞으로도 주어진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낼 수 있는데, 왜 나를 신뢰하지 않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핵심인재의 퇴사에는 폭력성이 담겨 있다. 핵심인재의 퇴사는 회사를 죽임으로써 회사로부터 훼손된 자기 존엄을 되찾으려는 갈망이다. 퇴사를 철회하여 남게 되더라도 회사에 머무르게 된 앞으로의 시간을 마치 적(敵)과의 동침처럼 생각하며 "당하기 전에 먼저 적을 친다"는 명제를 의식 속 저 깊은 곳에 담아두게 된다.




핵심인재를 잃지 않으려면?


[1] 핵심인재의 존엄을 인정해야 한다. 존엄을 인정한다는 말이 다소 어렵게 들리지만, 사실 특별히 어려울 것도 없다. 우리가 누군가의 존엄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를 나와 동등한 위치에 놓고 대한다는 뜻이다. '핵심인재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그래봐야 내 밑', '충원하긴 어려워도 어쨌든 너 없이도 회사는 돌아간다'라는 우위 싸움을 멀리 하는 게 제일 좋고, 설령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겉으로 내비치면 안된다. 그가 범상한 구성원 중 한 명이 아니라 회사의 주축이 되는 키맨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핵심인재의 관리가 시작된다.


[2] 핵심인재를 나와 동등한 자리에 놓고 대한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핵심인재를 조종하려 들지 말라는 뜻과도 같다. 자의식 또는 자기효능감이 강한 핵심인재는 경계심도 크다. 자신이 조종당하고 있다 느끼거나, 회사가 조종하려는 의지를 드러낼 때 거의 오차 없이 그것을 인지해낸다. 조종당하게 될 위험을 감지한 핵심인재는, 이 회사가 이제 나를 동등하게 대하지 않는구나, 나를 무시하기 시작하는구나,라는 공포감과 분노의 뒤섞임 속에서, 당하기 전에 먼저 회사를 친다.


[3] 그렇다면 조종(통제)하려 들지 않고서 어떻게 관리할 수 있단 말일까? 핵심인재는 '질문'으로 관리한다. '좋은 질문'을 건네는 것이 핵심인재에 대한 바람직한 관리법이다. 핵심인재에게 질문을 하며 답을 구한다는 것은, 핵심인재에게 '당신과 나는 동등한 자리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내일까지 혁신방안 생각해 오세요'라는 지시보다, '김 부장님이 토스 사장이라면, 업계 1위인 우리회사를 무너뜨리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세울 건가요?'와 같은 질문이 핵심인재와 일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극적인 효과를 주고자 핵심인재에 국한해서 썼다. 하지만, 비단 핵심인재에 국한할 문제는 아니다. 회사의 구성원 모두의 인격을 위와 같이 동등하게 대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짠내 나는 월급을 받아도, 가스라이팅 하는 직장 상사가 있어도, 이르고자 하는 위치에 다다르지 못하더라도, 퇴사라는 살의를 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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