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때, 기숙사에서 우리과 선배가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나는 그 선배랑 딱 한 번 밥을 같이 먹은 적이 있었는데, 차분하고 다정하고 사려깊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얼핏 했었다. 사실 그 선배와의 추억이 거의 없었지만 , 분위기 때문인지 뭔지 장례식장에 가서 엄청 울었던 것 같다.
그 사건이 있고난 후 학교에서는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에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MMPI 심리검사를 진행했는데, 기억은 희미하지만 나는 검사결과가 특이해서 따로 상담을 받아야된다고 했다.
황색 조명의 따뜻한 분위기가 나는 상담실로 들어가자, 차분한 여선생님이 따뜻한 차를 한잔 내어주시며 MMPI 검사를 하나하나 분석해 말씀해주셨다.
"제가 상담일을 10년째 하고 있는데, 이런 결과는 처음 봤어요. 학생은 지금 자살 생각도 너무 많이 하고 있고... 위험한 상태에요. 그런데 이 지표 보이시죠? 회복탄력성이 거의 상위 1%에요."
"회복탄력성이 뭐죠?"
"실패하고 좌절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말해요."
어쨌든 우울감이 높은 상태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나는 매주 수요일마다 상담센터에서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아야만 했다. MMPI, 문장완성검사, 그림검사 등 다양한 검사가 진행되었다. 검사를 통해 알게된 점이 있었다. 가족은 내게 기댈 곳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점. 내가 가족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분노 뿐이라는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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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능 실패 이후 우리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빠는 본가에서 회사를 다녔고, 엄마는 동생과 안산으로 가서 미술학원을 운영했다. 방학 때 본가로 내려가면, 아빠는 늘 술을 마시며 혼자 우셨다. 몸도 아프고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다. 내 대학교 등록금도 부담스럽고 동생 교육비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모든게 버겁고 외롭다고 했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다고 했다.
늘 강해보였던 집안의 가장이 서서히 망가져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나에게 고통 그 자체였다. 더 슬프고 괴로웠던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 장학금을 받아 아빠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학점에 미친듯이 매달렸다. 학점이 하나라도 A+가 나오지 않으면 세상이 떠날 것처럼 엉엉 울었다. 도서관에서 새벽까지 공부를 하다가 기숙사 문여는 시간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졸업 후 취업 걱정에 이것저것 그룹스터디 활동도 열심히 했다. 늘 잠이 부족했다. 남들이 말하는 대학교의 낭만? 나에겐 그런게 없었다. 추억이 없던 고등학교 시절을 대학교 때도 반복하고 있었다.
방학 때는 남들이 말하는 스펙 쌓기를 하느라 바빴다. 본가는 서울과 너무나 멀어서, 방학 때는 엄마 미술학원에서 지냈다. 나의 수능실패 후 안산에 사는 이모가 엄마를 설득해 같이 운영하게 된 학원이었다. 그런데 막상 엄마가 안산으로 올라가 보니, 엄마가 마치 이모부의 누나 자리를 꿰차고 들어가는 이상한 그림이 되어 있었다.
엄마 미술학원에는 조그만 방이 하나 있었는데, 나는 낮에는 대외활동과 토익공부를 하고 학원 문을 닫을 시간때쯤 미술학원으로 가서 잠을 잤다. 나 역시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에 들어갈 때도 나갈 때도 숨어 다녔다. 에어컨도 켜지지 않아서 잠을 엄청 설쳤다.학원에서 거주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 들켜서는 안되는, 바퀴벌레같은 삶이었다. 어느곳 하나 마음 편하게 쉴 곳이 없었다.
엄마는 이모부 누나분과의 갈등이 힘들었는지 정서적으로 더 피폐해져 있었다. 밤에는 이상한 소리를 내고 혼잣말을 하며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가끔은 맨정신에 아기말투로 말을 하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포인트에서 웃거나 울거나를 반복했다. 무서웠다. 아빠에 대한 피해의식이 심각했고, 아빠에게 전화만 오면 손을 덜덜 떨었다. 그리고 본인의 불안감을 고스란히 나에게 퍼부었다. 너 때문에 집이 산산조각이 났다느니, 너가 실패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가족이 행복했을 거라느니, 막말을 하면서.
나에게 집이라는 공간은 없었다. 본가도, 안산 미술학원도, 나에겐 마음편히 쉴 수 있는 안락한 곳이 아니었다. 있으면 안 될 곳에 있는 느낌.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친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으며 마치 내가 그 커다란 바퀴벌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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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난 오늘, 집에 더이상 대학생도 없고, 나는 탄탄한 직장에 다니고, 동생도 일을 하고 있는 상태임에도, 부모라는 사람들은 나를 밀어내기 바빴다. 서른이 넘었으면 독립해서 나가라느니, 부모 집에 얹혀 사는 걸 부끄러워할 줄 알아라느니. 우울증을 진단받고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임에도 너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느니, 한심한 사람이라느니, 끝없이 폭언을 한다. 비가 내리는 것조차 내 잘못이라고 한다.
10년 전 상담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회복탄력성? 그런게 나에게 있기나 한걸까. 지금의 나는 도무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없다.